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 신리 무명 순교자 묘역

"지난 72년에 이곳 과수원이 개발되는 바람에 무덤 40여기를 파묘했는데, 그중 32구의 시신은 목이 없었고, 묘에서는 묵주가 쏟아졌습니다. 주워모은 묵주가 한 됫박이 넘었답니다."

신리성지 무명순교자 묘역을 안내한 대전교구 신리성지 담당 김성태 요셉신부는 그렇게 말했다. 김신부의 얘기속에는 죽어서도 말을 하는 '묵주알의 신비'가 숨어있다. 언제 잡혀갈 지 몰라 살아서도 이미 산 목숨이 아닌 신리 교우들이 의지하던 묵주, 지은 죄도 없이 고통과 눈물을 삼키던 교우들이 손에서 뗀 적이 없던 묵주가, 목이 떨어져나간 주인이 천주교 신자임을 땅속에서 노래한 것이다. 얼마나 그렇게 지났을까. 1백여년도 더 묵은 세월을 건너 뛰어 묵주는 세상빛을 봤고, 말하고 있다. 나의 주인은 천주교인이라고.

당시 발굴현장에 있었던 신리의 생존자 손석윤 씨는 무명순교사 묘에서 발굴된 묵주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발굴된 교우들은 6개의 묘로 나뉘어 신리 무명 순교자 묘역1에 합장돼있다. 또 인근 뻐꿍산 손씨 선산 일부가 개발되면서 파묘를 하자 그 묘에서 십자가 등 성물이 또다시 쏟아져나왔다. 손씨 가족묘로 천주교를 믿다가 죽었다고 전해지던 묘의 비밀은 이렇게 밝혀졌고 신리 무명순교자 묘역 2에 이장돼있다.

흙더미 속에 묻힌 보화, 신리 무명 순교자 묘역을 들고나는 바람은 말한다. 지은 죄도 없이 어둠 속에 숨어 살았던 님들의 고통과 눈물이 있었기에 너희는 이렇게 밝음 속에 웃고 지내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 않는냐? 그런데 이제는 그 자유를 너무 쉽게 버리는 것 아니니?

최미화 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