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10·26

1979년 10월 27일 아침 대한민국은 급속하고 깊은 침묵 속에 빠졌다. 우울한 듯 다소 흐린 아침 날씨와 어울렸다. 그날 새벽에 알려진 '대통령 유고' 때문이었다. 출근길 사람들, 학교에 가는 어린 학생들까지 조용했다. 시내버스 안은 특별히 조용했다. 만원 버스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했다. 말 없이, 알아서 타고 알아서 내렸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도 말을 아끼거나 나지막하게 만드는 거대한 침묵이었다.

○…거리의 사람들도 입을 닫고 황급하기만 했다. 북적거리는 시장통도 침묵의 움직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분위기, 이날 아침 온 나라가 침잠 속에 빠져든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팬터마임과 다름없었다. 새벽 방송을 통해 알려진 정부 대변인의 '대통령 유고' 발표가 일순간 나라를 뒤집어 놓은 것이 아니라 깊은 나락으로 빠뜨려 놓은 것이다.

○…침묵은 곧 불안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도 물어볼 수도 알아볼 수도 없는 상황의 막막함이 사람들의 입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무게였다. '서거'가 아닌 '유고'만으로도 사람들은 미구에 닥칠 막연한 불안감에 숨을 죽여야 했다. 불안감의 핵심엔 북한 남침 위협이 있었다. 나라가 이 길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10'26 당시 궁정동 사건 현장에 있었던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은 후일 10'26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집권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재규가 주장한 '민주화'를 위한 계획된 거사라기보다 차지철의 전횡에 대한 반발과 분노의 소산으로 판단한 것이다.

○…10'26의 침묵을 깬 사람은, 역시 어떤 경우에도 권력을 쥐어야 하는 정치인들이다. 침묵을 깨는 방식, 투쟁무기는 김재규가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화'였다. 미국의 철벽 방어망 속에 국가 안보에 대한 불안을 덮고 대한민국을 민주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2'12와 5'18, 전두환'노태우정권을 건너 온 힘도 오로지 민주화였다. 민주화는 끝도 없이 진화하고 변이해서 급기야 북한의 '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연결됐다. 그리고 북핵에 어어졌다. 핵을 가지고자 했던 박 대통령은 이 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재열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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