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월의 마지막 밤 보내기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해마다 시월이 되면 '잊혀진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온다. '잊혀진 계절'은 25년 전인 1981년 신인가수 이용을 스타로 만들었고 이듬해 그를 10대 가수로 만든 '불후의 명곡'이 됐다. 이후 7080세대(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들에게 이 노래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도 10월이 되면 7080세대들이 즐겨찾는 라이브카페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똑같은 10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해서 세대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같을 수는 없다.

▶40대들에겐…

그렇다. '잊혀진 계절'과 '가을이 오면'의 차이처럼 요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가을의 느낌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래도 10월의 마지막 밤은 특별하지 않을까. 특히 7080세대들에게 10월의 마지막 밤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수산(46·자영업) 씨는 10월의 마지막 밤에 대구 수성못유원지에서 보트를 타고 프러포즈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정말 대단한 이벤트라고 생각했어요. 보트를 타고 꽃을 주면서 한껏 분위기를 잡았죠."

그러나 노랫말처럼 실연을 경험한 이들에게 10월의 마지막 밤은 아프다. 7080카페를 찾은 김지연(41) 씨는 그날의 기억이 새롭지만 이제 새로운 사랑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커플들에겐…

커플들에게 10월의 마지막 밤은 가을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 수 있도록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의 하나다. 연인들은 특별하게 다가 오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기 위해 단풍쌓인 호젓한 가을 길을 찾거나 재즈바를 찾아 와인을 기울인다.

대학생 이유진(23) 씨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평소 사진을 좋아하는 그녀는 지금껏 찍어온 남자친구의 사진을 정리, '사랑의 여정'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만들어 선물할 작정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팔공산 자락을 찾아 불쑥 남자친구에게 앨범을 주고 늘상 먹던 패스트푸드 대신 역사도시 경주를 찾아 맛깔스런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솔로들에겐…

같은 20, 30대라고 해도 솔로와 커플의 차이도 다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10월 마지막 주말인 28일 야외이벤트를 갖는다. 옆구리가 쓸쓸한 남녀 솔로들이 청도에서 마음을 열고 편안한 만남을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LG전자 남자사원들과 엄선한 여성회원 40여 명이 만나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낼 기회를 마련했다.

이날 이벤트에 참석하는 김혜정(27·사무직) 씨는 각오가 대단하다. "여러 사람들과의 경쟁을 뚫고 커플만들기에 성공한다면 10월의 마지막 날 연인들이 많이 가는 거리를 자랑스럽게 걷고싶다. 그리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다시는 쓸쓸한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지않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을 하는 바람에 올해 10월의 마지막 날을 혼자서 지내야 한다는 강주리(30·메트로갤러리 기획실장) 씨는 "싱숭생숭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마음 맞는 친구와 여행이라도 떠날 계획이다. 솔로탈출욕망은 강하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지 않느냐"며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라디오를 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의 마지막 날 그녀는 라디오에서 '잊혀진 계절'을 7번이나 들었다.

▶20대들에겐…

20대들에게는 '잊혀진 계절'은 없다. 대신 이문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서영은의 '가을이 오면'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20대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왜 특별해야 하죠"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건 7080세대들이 20대들의 해방구인 서울 홍대클럽을 기웃거려봤자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자친구를 찾지못한 이지운(23) 씨는 7080세대와 달리 10월 마지막 날이리고 해서 특별한 느낌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까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서도 "빨리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감출 수는 없겠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혼자 걸어도 좋은 낙엽거리가 있을 것"이라며 혼자서 담담하게 10월을 떠나보낼 작정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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