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과일놓고 돗자리 깔고 마루에서 단풍놀이

45세의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지신 아버지는 일흔 나이까지 병든 몸이라도 그럭저럭 병마를 견디셨는데 올해 들어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신 듯합니다. 생전 전화하시는 일이 없으신 아버지인데 "언제 울진오노? 추석에 갈 때 좀 있다가 온다했는데 안 와서 전화해봤다. 내 일어서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정신도 맑으시고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자세 한 번 바꾸지 못하십니다. 엄마는 힘에 부쳐 앉을 수 있게는 해도 설 수 있도록 부축은 못하십니다. 제가 가면 매일 눕거나 앉아 계시던 아버지께서 서 계실 수 있기 때문에 다녀가라 당부하십니다.

울진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방에서 마루까지 거의 안다시피 해서 모시고 나왔습니다. 딸이 자신을 번쩍 안아 옮기니까 멋쩍어 하시며 "이렇게 사람을 묶어두는 병이 어딨노. 저렇게 단풍이 빨갛고 노랗게 드는데 문밖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게 변했는데도 천장 벽지만 보고 있는 빙시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니 엄마랑 단풍놀이 갔으면 좋겠구만. 후~~ 다 쓸데없는 소리다." 아버지의 쓸쓸한 눈빛을 보며 저는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병을 얻으셨던 아버지, 아버지 병 수발 때문에 더 꼬부라진 엄마. 산에는 단풍이 지천으로 울긋불긋하고 논에는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데 우리 부모님은 골방에서 병마와 외로이 싸우고 계셨구나. 가슴이 저렸습니다. 그래서 그날 마루에 돗자리 깔고 과일 놓고 정말 단풍놀이 간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얼굴에 단풍을 물들였습니다.

장순이(대구 북구 대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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