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외국 차관으로 지은 아담한 건물은 지금 봐도 단단하게 잘 지은 건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만추(晩秋)의 단풍이 고운 KDI에서 경북 예천출신인 현정택(57) 원장을 만났다. 현우택 예천 대창고 교장과 4촌인 현 원장은 군인인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예천을 떠났다.
이후 현 원장의 이력은 화려함 그 자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MIT공대 경영학 석사,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를 하며 경제 전문가가 됐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가 주로 근무한 곳이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 재경원 대외경제국장, 비서실장, 국제협력관 등 요직을 거쳤다. 당시 4차, 5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KDI와 인연의 끈이 된 셈이다.
이후 그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대표부 경제공사를 맡으면서 재경원을 떠났다. 대통령 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초대 여성부 차관, 대통령 비서설 경제수석비서관, 외교통상부 대외직명 대사를 거쳤다.
국내외에서의 이런 다양한 경험이 현 원장에게 큰 힘이다. 특별한 전문 분야는 없지만 시야가 좁거나 한 쪽으로 치우치는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힘 세고 잘 나가는 부서에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폭넓게 경험한 것이 도움됩니다. 제가 지난 해 원장이 되자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이 전화로 '여성계의 경사다.'며 축하해줍디다. 차관을 했다고 여성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니 영광스런 일이지요."
최근 도미니카 대통령과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KDI를 방문한 것도 현 원장의 인맥 덕분에 가능했다. 평소 외교관을 많이 만나다 보니 외국 국빈이 한국 경제 발전의 상징인 KDI를 방문해보는 것도 괜찮은 프로그램이라는 얘기가 자연스레 나와 방문이 이뤄졌다.
현 원장의 KDI 운영원칙은 균형감각을 갖고 경제 원리에 충실한 정책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정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정책처방을 내리는 것이 국책연구기관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경제정책이 경제원리에 충실해야지 이념이나 철학으로 흐르면 안된다고 경계했다. "성장이냐 분배냐는 정치권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이념적, 철학적으로 다른 보수와 진보 진영이 상반된 얘기를 하는데 세밀하게 뜯어보면 별반 차이가 없어요. 결국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리자는 것인데 보수든 진보든 여기에 반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91이냐 92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현 원장은 KDI를 경제종합병원이라고 부른다. 경제문제가 있을 때 처방도 해야 하지만 미리 관리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 예방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는 뜻에서다. 1년 남짓 KDI에서 일한 현 원장에게 그간 성과를 물었더니 경제가 어려워 안타깝다는 말부터 했다. "경제가 좋도록 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국책 연구원장으로서 우리 경제가 어둡다는 전망을 내놓아야 하니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전망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2005년 경제성장 전망은 어떤 기관보다 정확했습니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4.3%대로 올해보다 다소 둔화될 것이란 전망을 최근 내놓았습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해 묻자 현 총장은 존스턴 전 OECD 총장의 말을 전했다. "존스턴 총장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한국민의 힘에 놀라워 하며 어떤 난관이라도 극복할 것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외환위기를 극복한 정신과 70년대 조국 근대화의 정신을 살려 다시 한번 뛰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이 쫒아오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질이 한 단계 높은 것을 생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지 않습니까. 고령화 문제 등 구조적 문제와 경직된 노사문화 등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합니다."
그러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이 기회라고 했다. 기술, 서비스 분야에서 앞선 미국과 부딪치면서 성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 원장은 KDI를 종합적인 연구기관으로 육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경제학자 일색인 KDI에 사회학, 정치학, 커뮤니케이션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영입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KDI는 경제 개발과 성장에 몰두했습니다. 이제 경제 문제는 독자적이지 않고 사회문제와 연결된 경우가 많지요. 따라서 우리의 시각도 종합적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구·경북의 경제에 대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 대구·경북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지만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로 넘어갈 때 뒤쳐졌다."고 진단하고, 공공 부문에 CEO 마인드를 도입하고, 우수한 인재의 네트워크화를 통한 지역발전 방안 찾기를 주문했다.
"최근 시행되고 있는 민자사업을 부산만 해도 20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대구는 1개 뿐입니다. 부산은 항만, 도로, 경전철 등을 민자로 건설하려 합니다. 대구도 민과 관이 머리를 맞대 사업계획서를 잘 만들면 많은 지역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현 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고향에 대해 촉구하는 얘기만 한 것 같다."며 "여왕이 찾았던 안동 등 긍지를 갖고 키워 나가야 할 우수한 자원이 지역에 많다."고 위로했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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