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늦지 않은 겁니다. 몇 분은 애교로 봐줘야죠."
며칠 전 만난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현재 KTX 정시율(5분 이내 지연)이 90%를 넘어서고 있다."며 '선진국 수준'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 말속에는 '몇 분쯤은 별문제가 아니다.'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동대구역에서 KTX 도착시간을 지켜보니 짧게는 1분, 길게는 10분까지 늦는 경우가 하루종일 계속됐다. 열차가 20분 이상 늦을 때만 일부 환불을 받을 수 있는 탓에 승객들의 시간은 철로 위에서 줄줄이 새고 있었다.
'시(時)테크'라는 단어에서 보듯 1분의 시간이라도 효율적으로 이용하자는 요즘 경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현상이다.
주말처럼 빈좌석이 없는 KTX라면 편당 탑승 인원이 1천여 명에 이른다. 이 열차가 1분만 지연돼도 1천여 분으로 거의 17시간에 가깝다. 지난 26일 동대구역을 경유하는 상·하행선 78편의 KTX 지각 시간은 총 280분에 달했다. 대당 평균 지연시간은 3분 40초 정도였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어떨까. 영국 워익대학의 이안 워커 교수가 제시한 방정식 (V={W(100-t)/100}/C, V는 1시간의 가치, W는 시간당 임금, t는 세율, C는 생활비)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평균 1분의 경제적 가치는 약 9펜스(180원)라고 한다.
이 방정식에 적용해보면 1천 명이 타는 KTX 1편이 3분씩 늦는다고 가정할 때 고속철은 대당 54만 원(1000×3×180)의 돈을 낭비하는 셈이다. 경부선으로 하루 100여 대의 고속철이 다니는 것을 감안할 때 5천400여만 원이 철로위에 버려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로 봤을때 '고작 몇 분쯤이야'하는 생각을 애교로 봐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도 전국을 관통하는 고속철은 시민의 돈을 선로위에 뿌리며 달리고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임상준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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