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직장女의 딜레마'…회식자리 접대부 문화 '환멸'

지난 2월 입사한 직장여성 A씨(25).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지난 7개월 동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입사 뒤 첫 한 달 동안 매일 이어진 회식자리마다 폭탄주를 마셔야했고 구토를 반복하다 길에서 정신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술보다 A씨를 더 힘들게 한 건 '접대부' 문화였다. 회식자리 때마다 '섹시바'나 '유흥주점' 같은 2차에 끌려가 반라의 여성들을 마주해야 했고, 접대부를 안고 음담패설을 나누는 남자 상사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상사에게 불이익을 당할까봐 차마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A씨는 "남성중심적 술문화가 여성들의 능력 계발 기회와 직장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직장여성 B씨(26)도 만취한 상사가 여성 종업원과 여직원인 자신을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잠자리를 청하는 상사까지 있었다는 것.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술자리 자체를 피하는 것으로 겨우 참고 있다고 했다. B씨는 "회식자리가 모두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직장 여성의 성적 수치심과 관련한 구체적 손해배상 액수를 정하는 이례적 권고를 내리면서 '남성 중심의 회식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직장 여성들과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 인구의 50.6%가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적응을 힘들게 하는 남성 중심적인 술문화가 계속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

실제 인권위는 지난 23일 회식장소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소였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 둔 C씨에 대해 회사가 200만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C씨가 회식자리에서 일명 '섹시바'라는 곳에 간 뒤 동료직원과 상사들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느껴 직장을 그만 둔 것에 대해 회사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여성단체들은 술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회사 경영진들의 마인드 전환과 여성 직장인들의 솔직한 거부 의사 전달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구여성회 안이정선 회장은 "직장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무언의 압력에 의해 여성 종업원이 있는 술자리를 피할 수도, 그 자리에서 항의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대구·경북은 남성중심적 문화가 특히 심한 곳으로 경영진들의 마인드 전환과 함께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적 결정력을 키울 수 있는 조기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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