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월새 50분이상 지연 '45회'

"해도해도 너무 합니다. 2시간이나 늦다니…. 어떻게 철도를 믿겠습니까?"

28일 오후 동대구역 개찰구 앞에서 만난 정종국(49·대구 동구 방촌동) 씨 부부는 대전의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오전 10시 17분 동대구발 KTX를 탔다. 하지만 이날 새벽 대전 세천역 인근에서 화물열차가 궤도를 이탈하는 바람에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읍 사이에서 1시간 반이나 옴짝달싹 못했다고 했다.

"결혼식이 12시인데 도착하니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더군요. 조카 내외는 보지도 못했어요."

정 씨는 결혼식에 참석 못한 데다 돌아오는 KTX조차 예정보다 23분이나 늦은 오후 3시 45분쯤 동대구역에 도착하자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결혼식을 마치고 괌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김성훈(33·대구 서구 평리동) 씨는 오후 3시쯤 자신이 탈 KTX가 30분 가까이 연착된다는 안내판을 보고 발을 굴렀다. 김 씨는 "인천 공항에 늦어도 6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비행기를 탈수 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한 30대 남자승객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직원이 보는 앞에서 기차표를 찢어 버리기도 했다. "책임져라." "보상하라."는 승객들의 고성으로 동대구역 안은 하루종일 시끌벅적했다.

화물열차 궤도이탈 사고로 생긴 일이지만 올 들어 8월까지 KTX가 50분 이상 지연된 경우(국회 국감자료)는 무려 45건이나 된다. KTX가 '코리안타임'의 대명사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만성 지각철

본사 기획탐사팀이 지난 26일 하루 동안 동대구역을 경유하는 KTX(총 78편)의 도착 시간을 점검해보니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기차는 거의 없었다.

26일 오전 6시 4분 부산발 KTX가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1분 지연. 첫 열차부터 지각이었다. 두번째 부산발 KTX(오전 6시 30분) 열차도 3분 늦게 도착했고 뒤따르는 기차들도 지각행진을 계속했다.

대합실 한가운데 설치돼 열차의 도착, 출발 상황을 알려주는 대형 안내판에는 지연시간이 '0'이란 숫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지연시간 '0'이라는 표시가 나오긴 했지만 이는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KTX였다.

주형진(38·대구 중구 남산동) 씨는 "KTX가 제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KTX는 시간 개념 없는 '지각철'"이라고 했다.

▶사과방송도 없어

KTX 지연에 따른 사과 방송도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의 원성을 부채질했다.

이상무(42·대구 북구 침산동) 씨는 "비싼 돈 내고 KTX를 이용하는데 늦을 때는 사과 방송도 하지 않는다."며 "이는 철도공사가 승객들을 우습게 여기는 처사"라고 발끈했다. 이 씨가 탈 부산행 KTX는 7분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부산발 KTX 열차가 플랫폼으로 도착하고 있다."는 안내 방송만 흘러나왔다.

오후 11시 33분쯤 마지막 부산행 KTX 열차까지 4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지각사태는 하루종일 계속됐고 승객들은 속절없이 시간을 플랫폼 앞에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시계를 보며 계단을 뛰어오르는 승객도 수없이 많았다.

건설회사 임원이라고 밝힌 한 50대 남자는 "손님의 도착시간에 맞춰 회사 차량을 몰고 나왔다가 KTX 지연으로 낭패를 본 적이 여러번"이라며 "서울, 대구를 바쁘게 오가다 회의시간을 맞추지 못한 적도 많다."고 했다.

이날도 10분 이상 늦은 경우가 3건이나 됐지만 승객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연착시간 20분이 넘어야 일부를 환불해주거나 할인권으로 보상받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

대전에 사는 김희영(28) 씨는 "매번 지연된다면 차라리 도착 시간을 늦게 해야지 맞지도 않는 시간을 왜 그대로 놔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대구역 개찰구 앞에 걸려 있는 'KTX 대구-서울 간 99분'이라는 광고판이 무색해 보였다. 실제로는 평균 104~105분이나 걸리는 '지각철'이기 때문이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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