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박예근 作 '설악산 산행'

설악산을 찾은 건

시월이면 온 산이 뜨거워진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파란 하늘을 쳐다봅니다

해마다 들끓는 시월을 만났습니다

잃어버린 걸 애써 끄집어내는데

한 시절 잊은 사람은

면전의 변화에도 외면한 채

산들바람에 섞입니다

삶이란 때때로

잊고 사는 게 좋을 수도 있답니다

그저 앞날만 바라보는 거라고,

다음 해를 기약하는 거라고

단풍처럼 아프게 사는 게

차라리 홀가분할 수도 있답니다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그조차 모르고 지낼 때

시월의 설악산 기슭에 서서

맑은 물소리 앞세우고

더듬대며 걷던 새벽의 행방을 찾습니다.

시월의 산의 단풍은 세속을 잊게 합니다. 속세 삶의 티끌을 벗은 맑은 마음속에 문득 '한 시절 잊은 사람'이 나타났다가 '산들바람에 섞'여, 가뭇없이 잊힙니다. 그렇습니다. '삶이란 때때로/ 잊고 사는 게 좋을 수도 있답니다'. 지난날 삶에서 받은 상처는 더욱 그러합니다. 지난날의 상처를 헤집으면 아픔만 깊어질 뿐입니다. '그저 앞날만 바라보'거나 '다음해를 기약하'며 사는 삶이 행복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단풍'이 붉게 물드는 까닭도 지난날의 상처를 잊고 '앞날', 혹은 '다음 해'를 기약하기 위해서일지 모릅니다. 이 단풍이 지고 나면 열매가 익어 씨앗이 되겠지요.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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