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권의 책)바람속에 서 있는 아이

"중요한 것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이지."

세상이 풍족해질수록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더 많은 것 같다. 학교, 학원을 시계추처럼 오가는 아이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만한 문구(文句)를 책 속에서 만나는 일은 그래서 반갑다.

쓸쓸함, 버려짐, 상실의 경험만이 줄 수 있는 교훈은 특히 그렇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는 아이들에게 남을 이해하는 태도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고개를 돌리는 따뜻한 마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 속에 서 있는 아이'(고시미즈 리에코 글/산하 펴냄)를 만난 것은 얼마 전 한 인터넷 북 사이트에서였다. 우리나라 80년대 국어교과서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삽화('영희'를 쏙 빼닮은 여주인공)가 눈길을 끌었다. '바람 속에 서 있다'는 제목도 위태한 듯하면서 때론 초월한 듯한 인상을 준다.

지난 해 일본 아동문예가협회상 수상작인 이 동화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양부모 슬하에서 자란 저자의 쓸쓸한 어린 시절을 소재로 했다고 한다.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듯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줄거리가 환상적이다. 동화의 형식을 빌었지만 소녀의 눈을 통해 삶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주인공은 주워온 아이라는 놀림을 당하는 사요코다. 책은 벚나무를 키우며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속에만 담고 살아가는 유키코 아주머니의 "행복은 기다려서도 안되고 좇아서도 안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느 날 사요코는 강 옆 창고 다락방에서 학생이었던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뒤 이불을 만들며 평생을 살아온 아래층 할머니와 친구가 된다. 할머니는 홍수가 난 어느 날 작은 배를 저으며 나타난 학생복 차림의 젊은 남자와 함께 안개 속으로 떠나간다. 할머니는 "인생은 여관처럼 잠시 들르는 곳"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그런데 이튿날 사요코는 창고 다락방에 오래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은 사요코가 친오빠라고 생각하는 다케시를 그리는 장면에서 더욱 고조된다. 꿈 속에서 만난 다케시와 꼭 닮은 소년을 '꿈의 부교'라는 곳에서 만나지만 이곳 역시 몇해 전 홍수로 허물어졌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듣는다.

"전쟁을 하려는 사람은 이것이 침략전쟁이라고 말하지 않아. 정의로운 전쟁 따위는 옛날에도 없고 지금도 없어." 일본인이면서도 객관적인 현실 인식이 돋보인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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