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북한의 핵 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등 12개국은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겨냥해 30, 31일 모로코에 모여 '핵 테러 방지 구상'을 출범했다. 알 카에다 등 테러단체들이 북한, 이란 등으로부터 핵물질을 입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역량을 구축하고 참여국들이 이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 등은 대량살상무기의 국제적 확산을 방지할 목적으로 출범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체제를 통해 북한을 압박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PSI 참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양국간 논의가 진행중이다. 국내에서도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PSI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과 전쟁 우려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 PSI란
대량살상무기의 국제적 확산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미국의 주도 아래 2003년 6월 스페인에서 출범했다. 미국이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부터 추진한 대량살상무기 반확산전략을 국제적으로 발전시킨 개념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대량살상무기 국제거래를 막기 위해 부시 대통령이 제안해 시작됐다.
PSI는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정보 공유는 물론 필요한 경우 가입국의 합동작전도 가능하다. 또 인신매매나 마약, 위조지폐 등의 밀수와 마찬가지로 대량살상무기 밀수를 가입국의 국내법으로 저지할 수 있어 실효성이 어느 정도 있다. PSI는 출범 당시 가입국이 14개였으나 70개국 가까이가 훈련 참가나 참관 등의 형태로 지지하고 있다.
▶ 한국의 참여 형태와 북한에의 영향
한국 정부는 지난해 미국의 제안에 따라 8개 항의 PSI 활동 중 옵저버 자격에 해당하는 차단훈련 참관, 브리핑 청취 등 5개 항에는 동참하지만 정식 참여와 역내 및 역외 차단 훈련시 물적 지원 등 3개 항목에는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29일 걸프 해역에서 열리는 PSI 훈련에 외교통상부와 해양경찰청 관계자 등 3명을 참관단으로 파견한 것도 이에 따른 조치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핵 실험 이후 우리나라에 PSI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북한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만큼 한국이 참가해야 선박 검색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설득할 명분도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PSI가 발동될 경우 북한은 외화획득 차단, 경제난 가중, 군수산업 위축, 군부 분열 등의 타격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PSI 이행에 따라 미사일 등 무기 수출과 마약, 위폐 거래가 차단돼 7억~10억 달러 규모의 외화 수입이 중단된다는 것. 남북 교류 및 지원이 중단 또는 축소돼 경제난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군사장비 개발과 생산을 위한 물품 도입이 중단되면서 군수산업이 위축되고, 위기감을 느낀 북한 군부가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조성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한국이 PSI에 참가하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PSI 참여론-북핵 해결 위해 한미 동맹 강화 필요
북한의 핵 실험 이후 국내 보수 진영은 위기 타개를 위해 한미 동맹의 강화를 해법으로 주장하고 있다. '북핵 해결의 출발점은 한미 관계의 복원이다. 그러자면 안보리 결의와 PSI 이행의 초기단계에는 한국도 적극 참가해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대북 제재에 참가하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북한의 속 보이는 협박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제재에 적극 참가하는 것이다.'(신문 칼럼) 'PSI 참여 거부는 한미 동맹의 균열은 물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결과만 자초할 것이다. 특히 북핵 문제 해결에도 아무런 기여를 못할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PSI에 정식 참여한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 그런 뒤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불필요하게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선택은 피하면 된다.'(신문 사설)
PSI에 대한 북한의 강경 반응에 물러서선 안 된다는 주장도 강하다. '한번 북한에 양보하면 북한이 상응조치를 취하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해올 것임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처음부터 북한의 협박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것은 물론 PSI 참여를 확대하고 금강산 관광을 포함해 대북 현금 유입 통로를 철저히 차단해야 옳다.'(신문 사설)
PSI 참여를 반대하는 측의 무력 충돌 가능성 주장에 대해서도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강경 대응이 현명하다고 지적한다. '만일 한국의 PSI 참여 없이 타국군에 의한 검색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한다면 한반도는 과연 긴장 없이 평화를 구가할 수 있는가? 총격전이 두려우니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그 논리대로라면 전쟁을 안 하고도 우리는 이미 북에 진 거나 다름없다. 전쟁 위협이 예상된다면 오히려 확실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궁극적인 전쟁 억지가 가능하다.'(신문 칼럼)
▶ 참여 신중론-유연한 대응으로 파국 막아야
PSI 발동에 따른 북한의 피해가 우려되고 그 여파가 심각한 만큼 당사국인 우리 입장에서는 사안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높다. 우선 우리나라가 처한 입장이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는 국가는 단연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 실험이 갖는 의미와 남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남한은 마땅히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PSI에 동참해 더 이상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거나 핵을 가지고 국제적 게임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남한이 취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해 적지 않은 제약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선 우리가 PSI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지금까지 지속해온 남북화해·협력정책이 커다란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신문 칼럼)
무력 충돌 가능성은 당장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대량살상무기를 운반하는 북한 선박을 검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다. 이는 이 지역에 심각한 파장을 일으키는 갈등 원인이 될 수 있다. 북한 선박이 우리의 정선 명령에 순순히 응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북한이 민간 선박 보호를 이유로 함정을 출동시킬 경우 우리 군과의 해상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신문 사설)
PSI를 통한 제재가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합법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잖다. '본래 PSI는 그 목적과 취지에 찬동하여 참여하고 있는 당사국들에조차 법적 기속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제기구나 협약체가 아니다. 이번에 채택된 안보리 대북 결의안도 최초의 미국 제시안으로부터 여러 차례 수정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본질적으로 완화되었으므로 PSI에 어떠한 명시적인 법률적 근거를 새롭게 부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신문 칼럼) 이 같은 주장은 국제사회가 대화를 병행하면서 북한을 대화의 무대로 끌어내고 종국적으로 핵 폐기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지, 섣부른 제재로 북한을 고립시키고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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