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개성과 미국을 다녀와서

미국 중서부시간으로 새벽 3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지만, 쉽사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난달 26일 개성에서 열린 아리랑·태림 석재 준공식 현장에 다녀온 후 일주일 만에 미국에 나온 사이 현지 중서부 시간으로 10월 8일 저녁 6시경 CNN을 통해 북한의 핵 실험 소식을 긴급 뉴스로 접했기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추석을 지내고 돌아온 많은 사람들이 시골집에 오순도순 모여 경제와 정치 이야기로 밤을 새웠을 법 한데, 난데없는 북핵 실험 소식에 또 얼마나 답답해하고 놀랐을까. 그런데 이번 북한 핵 실험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아마 북한·중국 그리고 한국 순이 아닐까? 적어도 미국은 그렇게 보고 있다.

그동안 북한체제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핵 확산 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핵 실험을 한 북한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피해자가 있다면, 수혜자도 있을 법하다. 이번 사태로 수혜자는 일본과 미국이 아닐까. 일본은 북핵 실험을 핑계로 더욱 우향우를 지향할 것 같다. 미국은 이번 UN 제재 결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북핵 사태 이후 줄곧 헤게모니를 잡고 있다.

다음으로 북핵 실험이 몰고 올 국내 경제의 파급효과는 무엇일까? 북핵 실험은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 한국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우선 안보 리스크가 고조될 경우 시장의 패닉현상은 당연한 것이 될 것이고, 특히 금융시장에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환율·주가의 단기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다.

하락세를 이어가던 환율은 국내 자본유출로 인해 달러화의 수요 증가로 대 달러 환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자칫 환율이 요동치면, 금리도 변하게 된다. 내수시장이 위축되면 금리를 인하시켜야하는데 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 상승압력이 존재하게 된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부딪히면 비가 내리기 마련인데, 집중폭우가 될지 가랑비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일기가 고르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북한이 또 다른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대북 제재조치가 훨씬 더 강화될 수 있다. 전방위제재로 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안보리스크가 더욱 커지면서 가뜩이나 침체되어 있는 내수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은 물론이고, 기업의 수출·투자 등 경제성장의 주요지표마저 크게 흔들릴 공산이 크다.

한국이라면 북한인지 남한인지 정확히 구별을 하지 못하는 미국 소비자들 한국을 핵실험한 국가로 오해할 수 있다. Made in Korea 제품의 판매가 줄어들 수 있다. 911 직후 아랍계 이민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던 사실을 보면 우습게 여길 일이 아니다.

기업들의 글로벌 생존경쟁에서 애써 쌓아 올린 한국 상품의 이미지가 서서히 무너질 수 있다. 한미 FTA를 통해 기업들이 기대하던 기업이미지 제고와 수출증가 효과마저 위축될 소지가 있다. 수출이 줄어들면, 한국경제성장은 둔화될 것이고, 주요 거시경제지표도 떨어지게 된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북한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되면 이미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생산 및 수출도 피해를 입게 된다. 북한도 적극적인 남북경협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이 무조건 당장 6자 회담에 복귀하지 않는 한 미국이 북미 2자 회담에 응하지 않을 것 같다. 상황이 이쯤 되면, 북핵 사태는 올해를 넘길 공산이 크다. 얼마나 지지부진하게 끌지는 모르겠지만, 최대 2년은 갈 수도 있다.

그나마 부동산 및 주식시장의 자산증가 효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조금씩 열리는 듯하다가, 금세 닫힐 수도 있다. 내수시장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게 된다. 한편, 한미 FTA 논의가 한창인 시점에서 북핵 사태는 한국 대표단의 협상입지를 다분히 약화시킬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핵실험은 남북한 모두에게 악수임에 분명한데 왜 북한은 핵 실험을 감행하였을까? 그것도 성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핵 실험을.... 어쨌든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은 인정하되, 핵보유국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북핵 사태로 인해 아무래도 한국경제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을 접할 것 같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이다.

곽수종(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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