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황인동 作 '새벽 등산길에서'

새벽 등산길에서

황인동

칡넝쿨과 등넝쿨이

서로 엉겨 뒹구는 걸 본다

나는 그 누구와 단 한 번이라도

저토록 껴안아 본 적이 있는가

바람을 안고 위를 향해 올라가는

저 눈물겨운 모습 앞에서

비로소 아름답다 말하리라

서로의 몸이 길이 되고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저 뜨거운 넝쿨도

어둠에 발이 걸려 수십 번 넘어졌을 것이다

넘어질 때마다 길 하나 새로 생겼을 것이다

새벽을 달리면서 어둠 툭툭 털고 나면

케케묵은 나의 관념들이 방뇨한다

곧은 줄기가 햇빛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걸

새벽 등산길은 내게 넌지시 일러준다

아, 내 몸에 철철 수액이 흐른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새벽, 미명 속에 드러나는 자연은 더욱 그러하다. 맑은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기 때문이리라. '칡넝쿨과 등넝쿨이/ 서로 엉겨 뒹구는 걸' 보고 그 누구와 '저토록 껴안아 본 적이' 없는 '나'를 돌아보고 서로 다른 사물이 뒤엉겨 '서로의 몸이 길이 되'는 상생의 아름다움도 본다. 또한 '어둠에 발이 걸려 수십 번 넘어'지면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길 하나 새로 생겨' 나는 희망적 삶의 원리도 알게 된다. 그뿐인가 '곧은 줄기가 햇빛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것도 새벽의 자연이 알게 한다.

세속적 욕망을 비울 때, 자연은 우리에게 스승으로 다가온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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