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조직원의 북한 공작원 접촉사건 수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이 사건의'몸통'으로 지목된 장민호(44) 씨의 마당발 행적이 관심을 끈다.
공안당국 등에 따르면 장 씨는 1981년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 10월 휴학하고 미국에 건너갔으며 1993년 미군의 그라나다 침공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1986∼1987년 현지 한국 신문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이때 인연으로 여권 인사가 나중에 주례를 맡았다는 소문도 있다. 장 씨는 1987년 미국에서 북한 대외연락부 소속인 재미교포 김형성(가명) 씨에게 포섭돼 1989년 처음 북한에 들어가 사상 및 통신교육 등을 받은 뒤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게 공안당국의 전언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89년 미군에 입대한 뒤 주한 미군을 지원해 한국에 돌아왔고 1993년까지 서울 용산과 대전에서 물류시스템 담당으로 근무했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뒤 같은 해 또다시 북한을 방문해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충성서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보기술(IT) 분야에 진출해 1994~1995년 통상산업부 산하 한국정보기술연구원 국제협력과장으로 채용됐다. 1995~1998년에는 국내 대기업 시스템통합(SI) 계열사에서 마케팅 팀장을 지냈고 1998~199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소프트웨어지원센터(해외 IT 지원센터인 아이파크의 전신) 지사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했다.
1999년 마지막으로 북한에 다녀온 뒤 3D 애니메이션 업체인 나래디지털엔터테인먼트를, 2000년에는 게임 전문 위성방송인 스카이겜티브이를 각각 설립했다. 월간 '신동아' 1999년 5월호의 '여권 핵심부 작성 극비 리스트, DJ(김대중 당시 대통령)가 탐내는 젊은 피 300명' 기사에 따르면 장 씨는 2000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이 수혈할 전문가 그룹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장 씨는 2004~2005년 지상파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사업권을 확보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나섰으나 실패했으며 최근까지 미디어윌 테크놀로지(모바일 솔루션 SI업체로 생활정보 신문을 발행하는 미디어윌의 자회사) 대표를 맡았다.
공안당국이 장 씨의 이런 '마당발 행보'가 북한의 지령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입증할 경우 정치권 등에 미칠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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