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 여성백일장] 산문-일반부 장원 신나라 作 '마지막 여행'

마지막 여행

신나라/ 구미시 황상동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웃지 않으십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백 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갔을 때도, 아버지 평생의 소원인 명문대에 합격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저에게 수고했다, 자랑스럽다, 이런 말씀조차 없으셨습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조심스레 들고 갔던 시험지도, 합격통지서도 아버지에겐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딸만 둘이었던 우리집에 또 딸이 태어났으니 아들을 바라셨던 아버지에게 나란 존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들을 대신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아빠라고 부를 만큼 가깝게 느껴지지 않던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대학가서 하는 일마다 더 아버지께 거슬리는 행동을 하고 그때마다 매를 맞으면서 반성하기보다 분하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내 다리에 드는 멍 때문에 아버지 가슴에 드는 피멍을 못 봤었나 봅니다. 그 후 아버지와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다 2년 전, 아버지는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항상 주말이면 등산이나 여행도 가시고 술도 잘 안 드시는 아버지가 암이라니. 바로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하시고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이라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엄마와 언니들 그리고 나는 돌아가면서 병실을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일찍 마치고 아버지 병실에 있던 날 어쩐 일인지 해가 다 저물도록 엄마와 언니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자그마한 병실에 아버지와 나 단 둘이 있는 것이 어색해 아버지는 창문만 바라보시고 나는 아버지와 반대쪽만 바라보았습니다. 도저히 아버지와 딸 부녀 사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병실 안 공기는 싸늘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긴긴 적막을 깨고 아버지는 이제 혼자 있어도 되니 늦었는데 그만 집에 들어가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어나 얼른 겉옷을 챙겨 입고 문밖을 나서려는데 심심할 때 읽어보라며 아버지는 작은 쪽지를 건네주셨습니다.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퉁명스러운 인사를 건네고는 병실을 나왔습니다.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삼십 분째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아까 아버지가 건네준 쪽지가 생각났습니다.

막내야.

요새 내가 아파서 그런지 네 얼굴을 자주 못 보는구나.

요새 하루 종일 병실에만 있다 보니 많은 생각을 떠올리곤 한단다.

아빠가 네게 따뜻한 말도 한 번 안 건네서 많이 섭섭했지?

딸만 둘인 우리집에 셋째도 딸이라 서운했지만 처음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엄지손가락을 물고 방긋 웃던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육십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을 물어본다면 아빠는 네가 유치원에서 처음 그린 그림을 나에게 보여줬던 날이라 말하고 싶단다. 그리고 그 그림 속의 주인공 슈퍼맨이 나란 걸 안 날이었지, 네게 뭐든 다해주는 아빠는 슈퍼맨과 같다고 넌 말했었지.

아빠가 그동안 표현을 못했지만 두 언니들과는 달리 넌 내게 특별한 딸이란다. 아빠에게 넌 항상 기쁨을 전해주는 딸이었거든.

아빠는 세상 누구보다 막내를 사랑한단다.

사랑한다 막내야

우리 조만간 여행 한 번 가지 않을래?

아빠의 쪽지를 읽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쪽지를 펴서 읽고 접었다 또 읽고 얼마나 반복했는지 접힌 부분마다 글씨가 희미해졌습니다.

어쩌면 저는 아버지에게 자랑스럽다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아빠와 가까운 바다로 짧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오늘도 책상 앞에 바다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봅니다.

내 삶의 길 한모퉁이에서 언제나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젠 제가 아버지의 슈퍼맨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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