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병이란 게 있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 병은 마치 무병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맑은 영혼에 서슴없이 꽂힌다. 대개 느지막한 나이에 문학 동네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학창시절에 한 번쯤 그런 병을 앓아본 사람들이다.
11월은 문학에 덜미 잡힌 사람들에겐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달이다. 바로 10일께를 전후하여 경향 각지의 신문사들이 다투듯 쏟아내는 신춘문예 공모 때문이다. 문학 지망생치고 그 꿈의 제전에 한두 번 도전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중앙문단에 연줄도 일면식도 없는 지방의 문학도들에겐 일 년에 한 번씩 치르는 신춘문예가 화려한 꿈이자,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오래 전, 청송 안덕이란 곳에서 잠깐 교직생활을 할 때였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마감일을 잘못 알아 일 년 벼른 제전에 얼굴도 못 내밀고 우울한 연말을 보낼 뻔한 일이 있었다.
아직 3~4일 정도는 남았다고 생각하며 여유롭게 들여다본 신문에서 그날이 바로 공모 마감일임을 알았을 때의 난감함이란! 혼몽한 충격 속에서 깨어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우체국으로 달려가는 일이었다. 그때가 저녁 무렵이었는데, 다행히 우체국 아가씨는 퇴근하지 않고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능놀고 있었다.
나는 내 역량을 총동원해 그 아가씨를 꼬드겼다. 그것은 내일 부칠 우편물을 오늘 날짜로 소인을 찍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허락을 받아낸 나는 득달같이 하숙집으로 달려와 원고를 정서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원고지에 일일이 육필로 베껴 쓰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하염없이 들어갔다.
거의 자학 수준으로 투덜거리며 정서하기 시작한 지 열서너 시간 만인가 어렵사리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을 때는 문살이 눈부신 햇살로 젖어 있었다. 그 문살의 기억을 끝으로 내 의식은 흐리마리해졌다. 웃지 못할 사달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머지않아 각 신문사마다 일제히 사고(社告)를 낼 것이고, 그러면 또 어김없이 문학 지망생들은 밤과 씨름하는 열병을 앓을 것이다.
이연주(소설가·대구 정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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