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릉을 뒤로 한 채 31호선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양북면 봉길리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입구에 도착한다.
월성원전 입구 초소 전망대에서 서북쪽 산이 지난 19년간 표류했던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이 들어서는 곳이다. 주민 투표로 확정된 이 방폐장은 동굴을 파서 2009년 12월까지 우선 1단계로 10만 드럼의 중저준위방폐물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완공하게 된다. 그해 1월부터 부분 완공 후 운영을 할 예정이다.
◆원전이 들어올 동네?
봉길리는 마을이 마치 봉황이 알을 품은 것 같은 모양이라고 하여 봉길(鳳吉)로 부르다가, 조선 말기부터 봉길(奉吉)로 고쳐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제 마을이 봉황을 품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 방폐물을 품게 될 줄 누가 알아겠으랴. 양북·양남이 볕 양(陽)자를 쓰고 있어 빛을 내는 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던가!
방폐장과 바로 인접해 있는 곳에 신월성 1, 2호기가 들어선다. 산을 깎아내고 파낸 흙과 바위들을 대형 트럭들이 연신 실어 나른다. 제법 많은 공사가 진행됐다. 해안으로는 치수 구조물과 부대 시설, 부지 조성을 위한 해상 매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이 수립된 것은 1967년. 고리 원전 1호기로 1978년 4월 가동을 시작했다. 월성원전 1호기(시설용량 67만8천kW)는 1973년 11월 건설계획을 확정한 후 2년 뒤 경주 양남면 나아리에 건설사무소가 설치됐다. 이곳 부지 63만 평을 매입하고 200여 가구에 대한 이주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착수됐다고 한다.
그래서 월성 원전이 들어선 양남 나아리의 송하·모포·장아·수애 마을에 살았던 주민들은 이래저래 이주에 대한 사연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고, 이주비로는 다른 곳에 가 집사고 땅 사려면 두 배가 더 들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월성원전 1호기 자리에 편입된 장아마을에 살았던 김동락(86) 할아버지는 "당시 평당 1천500∼2천500원 정도 보상을 받아 나아리로 가니 평당 5천 원 이상해 거처 마련하고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송하마을에 살았던 서정일(66·나아리) 씨는 "당시 배를 타서 돈을 좀 벌려는데 이주해 재산상 손해가 많았지만 큰 한은 없어. 하지만 조상묘 이장을 독촉해 시일이 부족하고 이장비 지원이라곤 화장할 수 있는 기름과 장작 살 비용 정도에 불과했지. 대부분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하는 바람에 일본에 계셨던 삼촌이 고향에 들러 부모님 산소를 찾았지만 모시고 갈 수 없어 살인죄보다 나쁜 죄를 지은 것 같아 죄스러웠어."라고 회상했다.
이후 월성원전 2, 3, 4호기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일년에 한 호기씩 완공돼 상업운전을 한 데 이어 신월성1, 2호기도 올해 공사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이 일대가 원전 6기와 방폐장, 에너지 관련 홍보관 등의 시설이 들어서 에너지클러스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리 상가
나아리는 면소재지도 아닌 마을임에도 제법 큰 마을이 됐다. 서정일 씨는 "월성원전이 생기면서 그 안에 편입됐던 주민들이 이주할 당시만 해도 상가라고는 구멍가게 몇 개에 불과했었다. 지금은 요식업소, 유흥 단란주점, 노래방, 병원, PC방, 당구장 등 없을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종의 가게가 130여개소에 달한다."고 했다.
경로당에서 만난 70대 마을 토박이 어른신들은 "고향과 선산을 잃고 쫒겨나오다시피 해 다들 아픔도 고생도 많았지만 어쩌겠어? 이왕 들어온 원전이며 방폐장이니 요즘처럼 벌어먹고 살기 어려운 시기에 마을사람 한 사람이라도 더 취직시켜서 생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노인들은 그러나 원전이 생긴 후 팔도사람들이 이 마을에 다 모이면서 인심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월성원전 김관열 홍보부장은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521억 원을 발전소 주변지역에 지원했고, 359억 원의 세금과 공과금을 냈다. 또한 월성원전 직원 중 13%인 165명이 경주시 출신자 우대로 입사했고, 협력업체와 건설업체에서는 30% 정도 지역 인력을 고용했다. 직원들과 그 가족들로 인해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되지만 많은 주민들이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하는 면도 있다."고 했다.
지난 88년 부산에서 이사와 어린이집을 운영중인 김재금(51) 씨는 "이사올 당시만 해도 상가 주위에 논과 밭이 많았으나 이제는 상가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도시화했다."면서도 "월성원전 직원들이 소비를 해 줘야 지역 경기가 살아나는데 직원 아파트에서 대부분 생필품 등을 구입하는 지경"이라고 했다.
이들 상가 주민들은 신월성 1, 2호기와 방폐장 공사가 본격화하고 한수원이 양북으로 이전되면 지역 경기가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경주·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