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한 우물 파기

나는 납작 만두를 좋아한다. 이를 잘 아는 아내는 기분이 내키면 가끔 시장에서 납작 만두를 사와 데쳐주곤 했다. 납작 만두에 지렁(간장)을 쳐서 먹기도 하고 고추장 양념을 묻혀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학교 담벼락 포장마차에서 먹던 그 맛은 아무리 해도 느낄 수 없는 것 같았다. 내 입맛이 변한 것일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담벼락에서 납작 만두를 팔던 그 포장마차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번 찾아가보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몇 년을 별러온 끝에 며칠 전 드디어 그곳을 찾아가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정문 앞 모퉁이에 낡은 포장마차 하나가 근 삼십오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채 거짓말처럼 서 있었다. 죽마고우를 만나는 설렘과 반가움을 안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장도 예상대로 그대로였다. 모두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포장마차는 삼십오 년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느낌이었다.

주인장은 삼십오 년을 포장마차에서 납작 만두 하나만 팔아 왔다고 했다. 납작 만두를 팔아서 세 아들을 모두 공부시켜 장가보내고, 집도 두 채나 장만했다며 뿌듯해했다. 넉넉한 얼굴과 여유있는 미소가 보기 좋았다. 아직도 자신의 납작 만두 맛을 못 잊어 타 도시에서도 찾아온다고 흐뭇해했다. 지금도 한 달 순수입이 약 오백만 원은 된다고 만족해했다.

얼굴이 팽팽하고 이도 청년 못지않게 튼튼한데 올해 연세가 고희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나이 칠십에 할 일 있어 좋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니 그 또한 신나고, 돈 벌어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주인장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를 조금 절었다. 팔자가 아무리 사나워도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당할 수 없고, 돈이 조금 모이면 팔자도 바뀐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은 험한 세상의 온갖 고난을 이겨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납작 만두 한 접시를 비우자, 묻지도 않고 납작 만두를 담뿍 담아 주는 손길이 퍽이나 넉넉했다. 납작 만두로 배를 꽉 채우는 바람에 저녁밥은 들어갈 틈도 없었다. 주인장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이태백이니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며 실업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어 있는 작금의 현실이 오히려 포시랍고 배부른 푸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률사무소나 회계사무소와 같이 힘들거나 골치 아픈 직장은 신입 사원을 구하기 어려운 반면 술집이나 PC방의 시간당 삼천 원짜리 알바는 넘쳐나는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땟거리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학생을 취직시켜주면 입맛에 조금 맞지 않는다고 몇 달을 못 견디고 그만두는 일이 많아 입장이 곤란하다는 실업계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친구의 넋두리가 아른거렸다. 나를 포함한 부모들이 자식들을 너무 귀하게 키운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의 설 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진단해 거기에서 최선을 다해 달인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대통령이나 법관·의사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모두 포장마차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기의 자리에서 성실히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반드시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한 납작 만두 포장마차 주인장이 무척 대견스러울 뿐이다. 퇴직금 수억을 받아 나오면서 낙담하여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사람이 비일비재한 현실이 어쩌면 엄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포장마차를 나서면서 나는 육체적 포만감만큼이나 정신적 충일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고희의 주인장이 내뿜는 엄청난 내공 때문이었다. 강호에는 과연 고수가 많았다.

오철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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