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희(32·대구 동구 방촌동) 씨는 오후 5시만 되면 남편이 일하는 사무실 건물로 향한다. 딸 정윤(3)이가 놀고 있는 어린이집이 건물 1층에 있기 때문. 90여 평의 아담하고 깨끗한 그곳은 바로 남편 회사인 (주)대교에서 지은 직장보육시설 '대교 동대구 어린이집'이다. 약속이 있어 늦어진다 해도 걱정없다. 오후 10시 30분까지 운영되기 때문이다.
박 씨가 첫째 정윤이를 맡기게 된 것은 6개월된 둘째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믿을 만한 곳이 없었다면 20개월 터울의 두 아이와 씨름하느라 힘들었겠죠. 남편의 회사에 어린이집이 만들어진 뒤 둘째도 여유있게 키울 수 있게 됐어요."
남편도, 아이도 대만족. 점심시간이면 딸을 보러 내려온다는 남편 최영창(39) 씨는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은 정윤이 어린이집 보낸 일"이라고 흐뭇해하고, 딸 정윤이도 "선생님이 너무 좋아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할 정도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윤순선 씨는 이 회사 직원은 아니지만 어렵사리 두 아이를 이곳에 맡기고 있다. 동원(5)이와 해인(7)이는 이곳 어린이집으로 옮긴 후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깨끗하고 믿을 만한 먹을거리예요. 아토피가 심했는데, 여기서 생활한 후 아토피도 많이 좋아졌어요. 대교 직원들이 너무 부러워요."
(주)대교가 직원들을 위해 서울·부산에 이어 올 2월 동구 신천동에 문을 연 '대교 동대구 어린이집'은 이처럼 직원 사기는 물론 가족들의 사기까지 높였다. 교사 한 명당 어린이 수는 6, 7명. 일반 어린이집 20여 명의 절반도 안 된다. 이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에 양질의 먹을거리가 있고 교육프로그램도 알차다.
대구지역 정규 직원 155명의 (주)대교가 의무사업장이 아님에도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한 것은 900명이 넘는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이다. 학습지 교사들인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직장보육시설은 필수. 김금자 원장은 "늦게까지 일하는 학습지 여성 교사들이 좋아하고 만족도도 높아, 전체 분위기가 아주 좋다."고 전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지역 중소기업 (주)BND 역시 1년 전, 보육시설 '디딤'을 설치했다. 전직원 78명에 여직원은 37명. '왜'라고 되묻기 쉽지만 권호 사장의 단호한 결단에 따라 칠곡 함지산 자락 2층 건물로 아담하게 지어졌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달 31일, 이날도 아이들은 산에서 풀꽃 관찰도 하고 직접 딴 구기자를 널어 말렸다. 한편에선 포도물로 염색을 해 속옷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처럼 '디딤'은 친환경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이는 '어린이집 운영은 모두 원장에게 일임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보통 어린이집 교사들은 계약직이 대부분이지만 이 어린이집 교사들은 직장보육시설 준비단계부터 적극 참여했다. 어느 방이든 고운 햇살이 드는 어린이집 건물 설계도 교사들이 3개월간 연구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아이들의 먹을거리는 유기농 재료만 사용하고 전래놀이, 생태답사, 자연관찰이 교육 프로그램의 주를 이룬다.
직원 자녀는 11명, 나머지 22명은 인근 주민의 아이들이다. 교육방식이 입소문이 나면서 대기자가 30명이 넘고 입학 시켜달라는 로비도 들어온단다.
김정자(36) 원장은 "회사에서 책임지고 운영하니까 만족도가 높고 학부모들의 참여도가 높다."면서 "무엇보다 내 직장에서 운영하는 곳에 아이를 맡긴다는 직원들의 자부심이 가장 중요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