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 확 변하고 이웃간의 벽이 허물어졌다. 너나 할 것 없다. 해가 지면 주민들이 모여 '공원을 지킨다.'
3일 오후 5시 대구 동구 안심1동 안심체육공원. 온 동네 주민들이 다 모인마냥 들썩거렸다. 하얀 모자에 완장을 찬 주민들 30여 명이 집게와 포대자루를 들고 낙엽을 주웠다. 도란도란 얘기꽃과 '하하호호' 웃음꽃이 이어졌다. 무엇이 주민들을 신나게 했을까?
김금순(46·여) 씨는 "우리는 공원을 지키는 환경미화원(?)이죠. 하지만 돈은 받지 않아요. 흙밭이 공원이 되자 주민들이 자기 집 앞마당보다 공원을 더 쓸고 닦게 됐어요."라고 웃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원사랑 지킴이'로 나섰다. 지난 9월 농구대만 하나 달랑 있었던 이곳이 체육공원으로 바뀌자 주민들이 '우리 손으로 공원을 보호하자.'며 모이기 시작한 것. 매일 5명씩 한 조를 이뤄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공원을 청소하고 관리한다.
김수자(50·여) 씨는 "그 전에는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애완동물 배설물과 쓰레기가 뒹굴고 저 뒷편은 상습 노상방뇨 구역이었죠. 그런데 보세요. 참 깨끗하죠?"
아이들이 인조잔디에서 맨발로 공을 차고 있었다. 족구장엔 고교생들로 가득했다. 정자 아래에서 장기,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 옆에 털썩 주저앉아 딱지치기를 하는 유치원생들도 신이 나 보였다. 정수만(62) 주민자치위원장은 "나부터 시작하면 4천만 국민운동이 되는 것 아니냐."며 "새벽에 '우렁이각시'처럼 몰래 나와 쓰레기를 줍는 어르신도 많다."고 했다.
신행수(72) 할아버지는 "6년 전 대기업 공장장으로 퇴직한 뒤 몸이 근질거려 못 살 지경이었다."며 "이 나이에 누군가를 위해 땀흘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방위협의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등 10개 단체도 가세했다. '봉사어르신' 2명을 선정한 뒤 조금씩 모은 월 15만 원의 용돈도 드린다.
조중호(54·신암1동 통장모임 회장) 씨는 "비가 많이 왔던 어느날 운동기구 아래 모래가 모두 쓸려나갔죠. 다음날 주민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마사토로 더 예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며 자랑했다.
안용환 안심1동장은 "대구에만 수백 개 공원이 있는데 이런 '공원지킴이'들이 많이 생겨 깨끗한 대구만들기에 동참했으면 한다."며 "아름답고 살맛나는 동네는 우리 주민의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체육공원이 주민들의 '만남의 공간'이자 '이웃사랑의 지킴터'로 변하고 있었다. 인조잔디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던 꼬마 아이들이 외쳤다. "하얀 모자다! 우리도 휴지 줍자!"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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