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오늘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로구나.
그러고 보니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도,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도(立夏)도 다 지나갔구나. 그럼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도 있었겠지. 앞에 붙은 '입(立)'을 빼니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되는 구나. 그것 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여기에 다 들어있었네.
입동을 맞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풍경이 있구나.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마당에 서있는 감나무 꼭대기에 조롱조롱 달려있는 감 몇 개가 바로 그것이지. 이 감을 까치밥이라고 한단다.
형편이 아무리 넉넉하지 않은 집이라도 날짐승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감을 모두 따 내리지는 않는단다. 이 까치밥은 늦은 겨울이 될 때까지도 매달려 있다가 새들의 먹이가 되어 준단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모든 짐승들과도 나누어 먹으며 살아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집에 함께 살아가는 가축들을 가리킬 때에도 짐승이라고 하지 않고 '가축'이나 '생구(生口)'라고 했단다. '생구'는 '함께 살아가는 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집짐승을 높여주는 마음이 담겨있단다.
까치밥을 남겨두는 까닭도 날짐승이 있어야 곡식을 해롭게 하는 벌레들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모두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생명들을 존중했기 때문이지.
이 까치밥을 보고 어떤 시인이 다음과 같이 읊었단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의 시 '옛 마을을 지나며' 중에서
그런데 도시에서 내려온 아이들은 장난삼아 장대로 이 까치밥을 따 내리곤 하는 경우도 있었나 봐. 이 모습을 본 어느 시인은 또 다음과 같이 읊었지.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마라
남은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에도
공중에 오가는 날짐승에게도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 송수권의 시 '까치밥' 중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따스한 마음을 담고 있구나. 우리도 언제까지나 따스한 마음을 가슴에 품어야 하겠지.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 될 테니….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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