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기른 검은 턱수염. 챙 없는 하얀색 모자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겉옷'
9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시리아 홈스에서 알 카라마와 200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을 치르는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현지 통역인 모하메드 알리(35)씨의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이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시리아인이지만, 알리씨의 입에서는 전라도 사투리가 약간 섞이긴 했어도 또렷한 발음의 한국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한국과 비수교 국가인 시리아인이지만 이처럼 한국어에 능통한 까닭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난 알리씨는 1983년 이슬람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건너왔고 서울 오산중학교 1학년을 잠시 다니다 전북 전주로 이사해 전주 기린중학교를 졸업했고 전주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시리아로 돌아왔다.
알리씨의 아버지는 현재도 전주에서 '학(學) 압두'라는 한국명을 갖고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1989년 시리아로 돌아온 까닭은 성인이 돼 비자가 만료됐기 때문. 알리씨는 귀국과 동시에 군에 입대해 홈스에서 2년6개월간 복무한 뒤 결혼해 1남5녀를 두고 있다. 직업은 알레포에 있는 속옷 공장 사장.
귀국 이후 17년간 한국말을 잊고 살던 알리씨가 통역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전주에 있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리씨는 전북이 지난 7일 홈스에 도착하면서부터 통역을 맡아 선수단 숙소 문제부터 훈련을 할 경기장 섭외까지 구단 측의 모든 요구 사항을 현지 관계자에게 전달하느라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정신없이 한국말과 아랍어를 동시에 쏟아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지만 학창 시절 모국어 못지 않게 몸에 익힌 한국말은 금세 터져나왔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한국 생활에 대해 물었더니 알리씨는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도 다 좋았고 음식도 입에 맞았다. 학창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장영수'라는 친구와는 아직도 연락이 닿는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한국 사람은 시리아와는 달리 정말 열심히 일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시리아 학생들은 하루 평균 5시간 밖에 공부하지 않는데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공부하는 한국 학생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 시리아에 입국하는 전북 관계자에게 고추장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는 알리씨는 "물론 시리아에 사는 것이 마음은 편하지만 부모님이 계신 한국에서도 다시 살고 싶다"며 "2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이렇게 가끔 한국 땅을 밟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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