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재 건물…방치·훼손되거나 아파트 숲 속에 고립

수십 년, 수백 년을 이어 온 문화재 건물들이 방치, 훼손되거나 외딴섬으로 고립되고 있는데도 행정기관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에 떠밀리고 행정의 눈길에서도 소외돼 '신음'하고 있는 짓밟히고 있는 문화재 현장들을 찾았다.

◇문화재가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대구 중구 C주상복합 아파트 신축 현장. 인부들이 '관리사무소'를 드나들며 건축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외관 곳곳은 전깃줄로 뒤엉켜 있고 건물 뒤편 외벽에는 시멘트를 덧댄 부분이 흉측스럽게 드러나 있었다. 이 관리사무소는 그러나 1923년에 지어진 대구상업학교 본관 건물로 엄연히 대구시 유형문화재 48호이다. 건물 내부는 곳곳에 금이 가고 벽면 등에서 떨어진 시멘트 가루가 바닥에 쌓여 있었다. 80년 전에 쓰여진 한시 액자도 먼지로 뒤덮여 곧 떨어질 것 같았다.

한 대구시 문화재심의위원은 "지난 8월 아파트 사업자가 이 건물을 아파트 내 전시실로 꾸미기 위해 건축 심의를 요청했던 적이 있지만 지붕 누수가 너무 심해 보류됐다."고 말했다.

◇문화재 영향 검토도 안 받아

대구시 유형문화재 47호인 계성학교 핸더슨관(대구 중구 동산동)은 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바로 옆에 들어섰다. 아파트 사업승인 단계에서 시공사와 대구시, 중구청 어디서도 '문화재 영향 검토' 신청을 하지 않아 공사기간인 지난 3년 동안 문화재 영향 검토를 전혀 받지 않았다. 현장 확인 결과 이 아파트 부지는 문화재 영향 검토 구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김완식 계성고 행정실장은 "2003년 6월 아파트 재개발 사업 승인이 나기 전에 시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문화재 영향 검토 신청 절차가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문화재 영향 검토 규정은 단속법이 아니라 보호법이어서 법을 위반해도 별다른 처벌이 없다."며 "이는 행정기관들이 문화재 관리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보호받지 못하는 문화재 경관

대구 중구 남산동 성 바오로 수녀원 내 성 바오로 성당과 코미넷관은 아예 아파트 숲에 갇힐 위기다. 수녀원 남쪽 주택가에선 지난 7월 30층(높이 85m) 짜리 아파트 건설 계획이 승인됐고, 수녀원 북서쪽 지역인 남산 2-2지구도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산 2-2지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수녀원 내 문화재는 동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이 고층 아파트로 갇히게 된다.

수녀원 인근 남산초교 강당(1936년 건립, 유형문화재 44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층 아파트가 동쪽에 들어설 경우 강당이 문화재로서의 빛을 잃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일조권 피해도 예상되고 있다. 성 바오로 수녀원 측은 성 바오로 성당과 남산초교 강당 등 문화재의 조망권 보호를 위해 문화재 인근지역에 공원이나 양로원 등 공공시설물을 설치해 달라는 탄원서를 대구시에 제출했다. 수녀원 측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문화재가 방치되는 것은 물론 수녀들의 사생활도 전혀 보호받을 수 없다."며 아파트 높이 제한과 차단막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현행법은 문화재 자체만 보호할 뿐 경관은 보호하지 않아 아파트 건설을 막을 방법이 없다."며 "아파트 설계 계획이 나오면 재개발 추진위원회와 수녀원 측의 협의가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경구 대구대 도시·지역 계획학과 교수는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 문화재는 단순한 외형적 판단보다 역사적으로 가치를 가진 유물로 바라보는 문화 마인드가 필요하다."며 "문화재를 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공공의 권리는 보장돼야 하며 일조권, 교통, 문화재 보호 등을 단순한 개발 논리로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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