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발칵 뒤흔든 억대 사기사건으로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한가족처럼 지내던 섬마을 주민들의 믿음이 점점 금 가고 있다.
◆"믿었던 내 이웃이…"=지난달 31일 울릉읍 도동3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김모(50) 씨가 10여 명의 이웃으로부터 수억 원의 돈을 빌린 뒤 가족 모두 도주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9월부터 10여 명의 이웃들에게 접근해 "제과점 운영비가 필요하니 1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해 최근 두 달 새 수억 원의 돈을 빌린 뒤 지난달 31일 부인(49)과 육지로 야반 도주했다.
김 씨는 또 모 선박회사에 근무하던 딸(25)에게 미리 사표를 내도록 하고 아들(22)과 함께 30일 오후 3시 포항으로 출발하는 배편으로 미리 섬을 빠져나가도록 하는 등 치밀하게 도주계획을 세웠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이같은 수법으로 김 씨에게 돈을 사기당한 피해자가 10여 명에 달하며 총 피해액이 2~3억 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김 씨 가족들에 대해 출국금지는 물론 전국에 긴급수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도 울릉도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던 한 주민이 지인들에게 10억 원 이상의 돈을 빌린 뒤 일가족 전부가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경찰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고 이들 가족을 뒤쫓고 있지만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내가 남이가?"="연대보증 세워야지, 담보 세워야지, 신용대출이라 해봐야 콩알만 하지. 차라리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친한 이웃에게 돈 빌리는 방법이 더 쉽지요."
억대 사기사건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울릉도를 발칵 뒤집은 것은 제도권금융보다 개인 대 개인 간의 돈거래에 익숙한 울릉도 정서가 낳은 비극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도권금융기관 경우 대출 문턱이 너무 높아 대부분 영세한 울릉도 주민들이 이용하기엔 힘들다는 것.
수년 전 울릉단위농협에서 대출업무를 하다 퇴직한 장현종 씨는 "울릉도에는 농협중앙회, 농·수협, 새마을금고 등의 금융기관이 있지만 여기서 대출받는 주민은 극소수"라고 했다.
이 때문에 울릉도에는 대규모 계나 일수놀이가 성행하고 있다. 연대보증제는 물론 부동산 같은 담보가 없으면 대출받기도 어려운데다 신용대출 경우는 해마다 금액이 하향조정되는 등 대출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는 금융기관보다 정(情)이라는 네트워크로 뭉친 개인 간의 돈거래가 더욱 쉬운 방법이기 때문.
게다가 부동산, 주식 등 재테크 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도 개인 간 돈거래를 활성화하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경실련 울릉군지회 김유길 사무국장은 "금융기관에서 돈 빌리는 것이 힘들다 보니 이웃에게 손을 벌리게 되고, 이것이 점점 쌓여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급기야 가족 모두 도주하는 사건이 빈발하는 것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라도 연대보증 폐지, 신용대출 확대 등 금융기관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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