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영웅들의 부활

英雄(영웅)을 향한 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오랜 문화적 습성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프로이트는 '영웅은 특별한 존재라기보다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깊이 도사린 이름 모를 불안감과 콤플렉스가 객관화돼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영웅을 찬양하게 되는 건 그들처럼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는지….

○…요즘 TV 드라마를 통해 淵蓋蘇文(연개소문)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 또 다른 영웅은 고구려 시조 朱夢(주몽)이다. 이 사극들이 크게 뜨고 있는 가운데 廣開土王(광개토왕)을 다루는 드라마도 준비되고 있어 동북아의 覇者(패자)로 일세를 풍미했던 고구려 영웅들의 부활 열풍은 더욱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비하적인 역사 인식에 젖어 있으므로 일단 고무적인 바람이라고 본다.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 65명에 한국인으로는 고 鄭周永(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白南準(백남준) 비디오 아티스트가 뽑혔다. 이 주간지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내놓은 아시아판 최신호(특별호)에는 지난 60년간의 영웅으로 이들과 함께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도 선정해 부각시켰다.

○…정 전 현대 명예회장은 우리나라가 극심한 빈곤에서 탈출해 세계 11위의 經濟大國(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점을 인정했다. 특히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해낸 고속도로 건설, 자동차 수출, 유조선 건조 등을 높이 평가했다. '비디오 아트' 창시자였던 백남준은 혁신적 작품으로 예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창조해냈다는 이유로 선정됐으며, 그 과정과 작품세계를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했던가. 그의 말대로 眞理(진리)도 眞實(진실)도 그렇듯이, 영웅에 대한 평가 역시 그의 시대가 저물 무렵이나 저문 뒤에야 제대로 내려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순신도 링컨도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활동한 亂世(난세)의 영웅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시대의 새로운 영웅 출현이 기다려지게 되기도 한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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