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日, 독도 이어 울릉도까지 빼앗으려 했나?

메이지 정부 일각서 '울릉도 개척' 의견 대두

1905년 '독도 침탈'을 주도했던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외무성 일각에서 독도를 시발점으로 울릉도까지 장악하려는 의견이 대두됐음을 보여주는 독도문제 연구 논문이 나왔다.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는 10일 한일관계사학회 주최로 열린 '동아시아의 영토와 민족문제' 국제학술대회에 '개항기 독도 문제:19세기 일본의 독도인식 분석' 논문을 발표해 1870년대 "일본 외무성 내에는 울릉도를 개척하려는 의견이 있었으며 1905년 일본의 독도 침탈(영토 편입)은 여기서 그 단서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호사카 교수에 따르면 당시 이 같은 '울릉도 장악' 의견을 제시한 관료는 와타나베 히로키(渡邊浩基) 외무성 기록국장으로, 1876년 한 민간인이 '울릉도 개척' 건의서를 내자 '울릉도-독도' 관계를 조사한 후 외무성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와타나베 국장은 이 의견서에서 "만약에 (조선이) 이미 손을 쓴 곳이라면 통치 상황을 실사해 그 다음에 방책을 정해야 한다"면서 함선을 현지에 보내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호사카 교수는 와타나베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조선인이 울릉도를 지배 중이라 해도 다음 방책을 생각해 울릉도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독도를 시발로 울릉도까지 장악하겠다는 침탈 의지의 발로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호사카 교수는 '울릉도가 조선 땅이라도 개척을 위해 다른 방책을 생각하자'는 와타나베 국장의 말은 "최종적으로 울릉도를 빼앗을 생각을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와타나베의 이런 주장은 당시 같은 외무성의 다나베 다이치(田邊太一) 공신국장이 "지금 이유없이 사람을 보내 울릉도를 조사시키는 것은 타인의 보물을 넘보는 행위"라며 울릉도 현지 조사와 개척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낸 것에 비추어 볼 때 그 의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호사카 교수는 "당시 일본 외무성 내에는 독도를 조선영토로 주장하며 에도(江戶)막부의 입장을 계승하려는 의견과, 독도를 일본령으로 왜곡시켜 울릉도 개척을 기도하려는 의견이 있었는데 일본 정부는 후자의 의견을 채택해 1905년 독도를 시마네(島根) 현에 편입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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