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학교 갔다와 배고파서 벌컥벌컥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홀로 오 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조그마한 음식점을 하고 계셨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몹시 고팠던 나는 엄마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점심식사손님을 한바탕 치른 다음인지 엄마는 계시지 않았고 자야언니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 눈에 주방선반 위에 놓인 뽀얀 액체가 든 국그릇이 들어왔다. 배가 고팠던 나는 그걸 다 마셔버렸다. 아! 시원하면서 달짝지근한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환상의 맛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자야언니가 자신이 마시려고 막걸리에 설탕을 타놓았다가 잠시 잊어버리고 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테이블에는 미처 치우지 않은 음식 그릇과 또 남은 막걸리 그릇이 보였다. 그날 나는 아마 3그릇 정도를 마셨을 것이다. 그 다음은 도무지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지금도 제삿날이면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 이야기이다. 십여 년 전 어머니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어머니 제삿날에 만나게 되는 막걸리는 항상 나에게 눈물과 웃음을 선사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막걸리를 통해 그때 그 시절, 부족하고 배고팠지만 끈끈한 정으로 서로를 안았던 그 당시, 추억의 길잡이처럼 막걸리는 따스한 온기로 내게 다가온다.

이진선(대구시 북구 침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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