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의 지혜

팀 루서트 지음/이경식 옮김/문학수첩 펴냄

폭력배의 칼 공격을 받은 남자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목에 난 흉터만 보면 그 이글거리던 분노가 떠올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때를 생각하면 공포를 잊을 수 있었다. 장난감 면도기로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추억이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게 한 것이다.

흔히 요즘을 '아버지의 수난시대'라고 한다.

가장의 권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됐고, 드라마에서조차 아버지는 '우스꽝스런 인물'로 그려진다. 세계 제2위의 갑부이며 투자의 귀재인 워렌 버핏은 "내 삶의 가치를 키워 준 첫 번째 영웅은 나의 아버지였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극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아버지가 떠올려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아버지의 말 한마디와 함께한 추억은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지은이 팀 루서트는 '미국의 손석희'라 할 수 있는 앵커다. 2004년 '청소부 아버지 & 앵커맨 아들'로 뉴욕타임스 12주 연속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미국민을 감동시켰다.

이 책에 감동을 받은 독자의 아버지에 대한 편지를 묶어 '아버지의 지혜'로 펴냈다. 지은이는 6개월 동한 하루 수백 통의 이메일과 편지를 읽으면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TV 등 원하는 것을 사줬다'는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모두 아버지와 함께한 어떤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여러 개의 장 가운데 하나의 제목을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라고 붙였다.

'아버지와 딸' '아버지는 나의 스승' '괴짜 아버지들' '어머니가 된 아버지' '아버지의 손, 아버지의 발' '아버지의 죽음' 16개의 장으로 된 이 책은 보통사람의 위대한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15년 동안 아버지와 소원하게 지내다 아버지가 죽기 직전 화해한 딸, '커밍아웃'한 아들을 "난 네가 뭐든 상관 않는다.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한다, 아들아"라며 포옹한 아버지 등 감동적인 실화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읽으면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아버지의 가르침이 얼마나 큰 교훈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지혜에 대한 헌사다.

지은이는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존재를 늦게 깨닫기도 한다."며 "그러나 그 깨달음이 아무리 늦었다 해도 아버지는 언제나 소중하고 감동적인 의미"라고 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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