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TV드라마를 영화로 옮길 때 제작진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봐버렸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관객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보는 눈'이 많아서 쉽게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는 넣어야 하고, 또 어떤 이야기는 빼버려야 할지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된다.
제작진이 똑같다면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되겠지만 다른 제작진, 그것도 외국에서 리메이크될 경우에 이는 더욱 복잡해진다. 일본 TBS 방송에서 2002년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한 '사랑따윈 필요없어'(감독 이철하·주연 김주혁·문근영)도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 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일정한 극적 흐름 없이 듬성듬성 늘어놓는 에피소드는 원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이거 미니시리즈 아니야?'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영화 시작할 때 자막으로 원작을 밝혀 놓으니 피해갈 수 없다.) 이미 원작을 봤다면 각 회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긴 하다.
물론 화면은 아름답다. 눈부신 삿포로의 설원, 보성 녹차밭 한복판에 세워진 대규모 저택,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의 벚꽃 축제, 아름다운 우포늪의 야경 등. 그리고 국민 여배우 문근영(류민 역)이 있다. 밝으면서도 부드러운 화면 톤으로 잡아낸 문근영과 김주혁의 얼굴은 한 번씩 광고 장면처럼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야기는 한참을 헤맨다.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오빠(류진) 행세를 하는 줄리앙과 류민의 아슬아슬한 사랑은 비극으로 흘렀다가 해피엔딩을 향해 간다. 그러나 발길을 돌린 이야기는 다시 사랑의 비극으로 치닫다가 알 수 없는 결말을 제시한다. 일부에서 '오직 문근영을 위한 영화'라고 평가할 만큼 원작의 재미도 못 살리고, 그렇다고 색다른 모습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아무 음식이나 무조건 섞는다고 맛있는 비빔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기배우와 흠잡을 데 없는 배경, 화면을 갖추었음에도 '사랑따윈…'은 영화의 가장 기본인 이야기 풀이에 실패하면서 재료와 밥의 비율이 맞지 않은 비빔밥같이 돼 버렸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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