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어렵다고 한다. 문제를 보니 '앞이 캄캄하다'고 한다. 학생들도 그렇고 교사들도 난감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의 일류학원에서 나온 모범 답안이란 것들도 70점 수준이라고 하니 논술과외라는 것은 별로 믿을 것이 못되는 모양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황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논술이 왜 어려운 것일까? 왜 논술이 안 되는 것일까? 먼저 그간의 기출문제와 예시문제들을 살펴보자. 주제별로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세계화와 그 그늘 ▷현대 기술문명의 비인간화 ▷시장논리와 상업적 소비문화의 병폐 ▷인간관계의 파편화와 인간실종의 문제 ▷도구적 지식과 삶의 지혜 ▷경제성장과 양극화의 문제 ▷인간 교육의 문제 ▷도덕성 상실의 문제 ▷미래적 삶과 대안적 삶의 방식 ▷지식사회와 정보의 사회화 문제 ▷환경문제와 생태주의 ▷여성, 청소년 문제 등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 적어도 30개, 많으면 50개 정도의 주제를 소화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이 있어야 한다. 그간에 출제된 문제들을 잘 살펴보면, 삶의 건강성 문제와 인간적 사회를 향한 가치판단과 균형적 감각을 요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보면, 학교공부나 학원공부로서는 대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그렇고 근래의 대학공부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를테면 세계화, 시장논리 등에 대해서 무비판적이다. 그러나 논술문제는 그와 전혀 다른 시각을 요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부작용과 그늘, 시장논리의 비인간적 측면에 대한 비판을 요구한다. 또 학생들은 소비문화에 젖어있지만 정작 논술문제는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을 요구한다. 학생들의 문화적 생리일반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황할 수밖에 없고 문제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주제파악도 못하고 주저앉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소에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생각도 해보지 않았으니 주제파악이 될 리 없다. 주제파악이 안된다면 논술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논술문제의 관건은 주제파악이다. 주제파악이 정확하다면 낭패를 보는 일은 없다. 논술지도를 해 본 교사들은 잘 아는 바이지만 논술은 글쓰기 요령이나 논리적 감각의 훈련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독서, 인문 사회적 교양과 관련된 독서를 요구한다.
그것도 사전적인 교양이 아니라 일정한 비판적 감각을 요한다. 그래야 주제파악이 되게끔 되어 있다. 그래서 논술에서 특별한 요령이나 기법은 따로 없다. 논술은 글쓰기인 것 같지만 실은 그 이전에 생각하기가 먼저다. 그러니까 주제파악에 이를 수 있는 생각하기를 훈련하는 이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
논술은 수험생들에게 거대한 장벽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장벽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장벽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장벽의 실체이다. 그 벽을 넘자면 무엇보다도 평소에 '보는 문화'가 아니라 '읽는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의 경우, '읽는 문화'가 없고. 보는 문화만 있다. TV를 보고 게임의 동영상을 보고, 교과서도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스스로 생각하고 따지고 판단하지 않고 눈에 비치는 대로 보고 머리에 입력할 뿐이다. 학생들은 생각 없이 보는 것을 좋아하지, 생각하고 따지는 것은 질색이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고통스럽게 생각한다. 그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러자면 인문, 사회적 기초 소양을 갖추는데 필요한 독서를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독서라는 것은 책을 구경하듯이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서 삶의 문제, 그리고 인간적 사회를 향한 비판 감각을 키우고 자신의 시야를 열어가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논술이란 것을 입시용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대학의 공부라는 것은 '보는 문화'로서는 대처가 어렵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따지는 능력이 없이는 지식정보의 앵무새가 될 뿐이지 지식정보를 가공하고 창출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없다. 대학에서 논술고사를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입시의 변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배영순(영남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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