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는 과연 어떤 곳일까. 지난 9일 '작은학교' 운영보고회가 열린 대구 달구벌고등학교(동구 덕곡동)를 찾아가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미선이의 대안학교 일기
"여기가 정말 학교 맞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신기했어요."
김미선(달구벌고 3년·대구 칠성동) 양은 일반계 고교를 다니다 2학년 2학기 때인 지난해 팔공산 자락의 달구벌고로 전학왔다. 중학생 때부터 줄곧 대안학교를 동경해오던 차에 달구벌고에서 열린 여름방학 캠프에 참가한 뒤 마음을 굳힌 것이다.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라는 소개에 '필(feel)'이 꽂혔다. "저도 학교를 평가하고 학교도 저를 평가한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미선이는 말했다.
입학 첫날부터 '학교라면 당연히 이런 곳'이라는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일반계고 '심화반'에 다니면서 오후 11시까지 '심야자율학습(심자)'을 해야 했던 미선이로서는 학생과 교사들의 자유로운 모습에 딴 세상에 온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 보는 데서 애들이 별명을 불러요. 윤리 선생님은 '윤 영감', 영어 선생님은 '심슨(만화 주인공을 닮았다고 해서)', 과학 선생님은 '마루'라고. 그러면서 선생님께 매달리고 장난을 걸더군요. 버릇이 없다기보다 '참 친하구나' 하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저만 괜히 '뻘쭘'했죠."
수업과 학생지도로 늘상 바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틀린 문제 개수대로 벌을 줘야 하는 종전의 선생님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런 (선생님의) 역할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적어도 교사가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지요."
교육 방식도 신선했다. 국·영·수 등 공통교과목 시간은 일반 학교와 큰 차이가 없지만 그 외 수업은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산책을 해도 좋고 기숙사에서 독서를 해도 좋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도 좋다. 이곳에서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공부만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작은 학교'와 특기적성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학생들은 목요일 오후 4시간을 통째로 제과제빵, 애니메이션, 목공예, 밴드, 요가, 조리 등 12개 과목을 선택해 배운다. 다른 학교에서는 보충수업이 진행되는 평일 오후 7, 8교시가 이곳에서는 다양한 특기 적성을 기르는 시간이다. 미선이는 검도, 영어회화, 배낭여행을 수강하고 있다고 했다. '배낭여행도 과목이냐'고 물었더니, 이번 겨울방학 동안 배낭여행을 갈 여행지를 고르고 여행계획을 짜는 시간이라며 웃었다. '대체수업'이란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오늘 체육수업을 하기 싫다면 그 대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교사에게 말하고 허락을 받으면 된다.
야간자율학습은 없다. 대신 '묵학' 시간이 있다. 교실에서 숙제를 해도 좋고 기숙사에 가서 책을 읽거나 외국어 회화 공부를 해도 된다. 산책을 나가도 좋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미선이는 "일부에선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학교 시스템에 적응을 못하거나 성적이 떨어지는 문제아들이라고 보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열심히 고민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미선이는 '학교의 억압'을 피해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전학 의사를 알렸을 때는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모두 만류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배우고 싶은 방식, 자신의 꿈을 좇아 제발로 교문을 걸어 들어왔다. 미선이는 이번에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의 첫발을 뗀 것이다. "아이들마다 개성이 제각각이고 소질이 다른데 획일적인 교육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이런 것들이 존중되면 일반 학교들도 서서히 행복한 학교로 달라지겠지요."
◇지역의 대안학교들
영남지역에는 달구벌고 외에도 경주 화랑고(양북면 장항리)와 경남 산청 간디학교(고교과정)가 대표적인 대안학교로 꼽힌다. 화랑고는 1998년, 간디학교는 1992년도에 문을 열었다.
경주 화랑고는 한 학년이 40명(2개반)으로 내년 신입생 모집은 지난달에 마감했다. 평균 경쟁률은 2대 1가량. 교육부인가(자율화 특성화고) 학교인 이곳은 국궁, 선무도, 텃밭 가꾸기, 도예, 지리산 종주, 해양훈련 등 다양한 인성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인성 함양 차원의 '마음대조' 공부도 이색적이다.
간디학교는 총 4곳이 있지만 산청 간디학교만 인가학교다. 간디 농장, 간디 공동체 마을로 시작해 지난 92년 학교 문을 열었으며 97년 교육부 인가를 받았다. '지식교과', '자립교과', '감성교과' 등으로 교과를 구분하고 있으며 감성교과에서는 도자기 굽기, 천연염색, 목공예 등 다양한 특성화 수업을 하고 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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