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Macao)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카지노를 떠올린다.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릴 정도로 정말로 카지노장들이 많다. 카지노장엔 24시간 내내 손님들이 들끓고, 화려한 불빛들은 마카오의 밤을 수놓는다.
하지만 마카오는 카지노 외에도 보고 느끼고, 즐기고, 먹을 것이 너무도 많은 도시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들이 첫발을 내디딘 이후 450년 동안 마카오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독특한 역할을 맡았다. 터키 이스탄불이 동·서양을 잇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양쪽을 아우른 문화를 낳은 것처럼 포르투갈~중국의 통로였던 마카오 역시 동·서양이 '공존'하는 문화를 탄생시킨 것. '퓨전(fusion·융합)'이란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다.
마카오의 서쪽에 있는 까모에스 정원. 포르투갈 저명 시인의 이름을 딴 정원에 들어서자 시원한 분수대부터 눈에 들어온다. 정원 곳곳에선 태극권과 배드민턴을 즐기는 노인들이 보이고, 동굴 속에 자리 잡은 까모에스 시인의 흉상도 이채롭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다른 외국 도시에 있는 공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까모에스 정원이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이곳에 있기 때문. 정원 뒤편으로 돌아가자 언덕 아래에 갓을 쓴 김 신부의 동상이 보인다. 1837년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마카오에 온 김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에서 신학수업을 받는 등 6년간 마카오에 머물렀다. 1984년 김 신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됐고,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이듬해에 까모에스 정원에 동상을 세웠다. 정원이란 하나의 공간에 16세기 포르투갈의 시인과 19세기 조선의 사제가 공존하고 있는 것. 정원 앞에 있는 성 안토니 성당의 제단 아래엔 김 신부의 유골이 모셔져 있어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다.
안토니 성당에서 5분여를 걸어 찾은 곳은 마카오 박물관. 17세기 초에 요새로 건축됐다가 총독의 관저를 거쳐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문자, 사상, 종교 등을 동·서양으로 대별시켜 놓는 등 마카오만의 독특한 퓨전문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마카오를 상징하는 성바울 성당의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 초 지어진 이 성당은 1835년 화재로 정문과 정면계단, 건물의 토대만을 남긴 채 모두 불타버렸다. 불이 났을 때 정문에서 뒤편으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 그나마 정문 등은 살아남았던 것. 비록 폐허가 된 건축물이지만 동·서양 문화의 독특한 결합을 잘 보여준다. 성경에서 구원의 의미인 40을 기둥 40개로 나타낸 것처럼 주로 성경을 형상화하면서도 중국의 명언들이 한자로 쓰여 있는 등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마카오만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김대건 신부가 수도를 위해 교회 앞 계단을 기어올랐다는 말에 방문객들의 얼굴엔 일순 숙연한 표정이 감돈다.
성바울 성당에서 10여 분을 걸으면 마카오의 가장 중심인 세나도 광장이 나온다. 돌로 된 물결 무늬의 모자이크 노면이 광장까지 이어진다. 보행자 전용인 광장은 마카오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꼭 들르는 명소.
다른 유적들이 동·서양 문화의 퓨전이라면 그리 크지 않은 세나도 광장은 과거와 현재의 퓨전이라 할 수 있다. 16, 17세기에 지어진 교회와 자선시설들이 광장을 감싸고 있는가 하면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옷가게와 식당, 카페 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광장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가게를 구경하다보면 약속 시간을 놓칠 정도로 방문객을 매료시킨다. 특히 건물의 아름다운 조명과 불빛을 받은 모자이크 노면이 연출하는 야경도 아름답다. 고층 빌딩과 현대적 도시계획의 그늘에서도 지속적인 복원을 통해 이를 보존한 마카오인들의 노력에 탄성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마카오의 상징물이자 수호신인 관음상.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 위에 선 높이 20m의 관음상은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불교를 잘 모르는 포르투갈 조각가가 관음상을 제작한 결과 동·서양이 어우러진 관음상이 탄생했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 독특한 문화를 낳은 마카오에 딱 어울리는 건축물이다.
글·이대현기자 sky@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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