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43) 감독의 신작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제작 모호필름)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 '무시무시한' 영화를 만들었던 박찬욱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라니. 그런데 배경이 독특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두 남녀가 주인공. 뭔가 색다를 것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나.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은 처음"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이번 영화에서 꾸준히 천착해온 폭력 미학이 아닌 발랄한 청춘을 소재로 택했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복수 3부작'(복수의 나의 것·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과 차기작인 흡혈귀 영화 '박쥐'(이미 송강호가 캐스팅돼있다) 사이에 놓인 작은 섬"으로 표현하며 "단추를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드는 소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영화는 청춘스타 정지훈(비)이 캐스팅되고, 임수정이 가세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1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의 어느 감독이 정지훈을 데리고 쉬어가는 영화를 찍을 수 있겠느냐"면서 "소품으로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제작비·촬영분량·컴퓨터그래픽 등이 예상보다 훨씬 초과했다"고 말했다.
"사랑 얘기가 섣불리 해서는 싸구려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증오·복수 등을 다룬 이야기보다 더 조심스럽더라고요. 결국에는 전작보다 더 공을 들인 작품이 돼 버렸습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지훈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영화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정지훈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정지훈에게 첫눈에 반해 출연제의를 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만나자마자 후다닥 일이 진행됐다"며 정지훈의 캐스팅 과정을 설명했다.
"주변에서 정지훈이 연기자로서 잠재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캐스팅하기 이전에 연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가)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 감독은 "세련되고 기교 많은 명배우보다 선입견이 형성되지 않은 순수한 느낌의 배우가 필요했다"면서 "청춘의 이미지가 필요해 정지훈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임수정)과 그를 사랑하는 일순(정지훈)의 이야기. 여기에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이야기가 보태진다.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떠오른 이미지는 환자들이 단체로 치료를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환자 그룹 전체가 주인공인 영화를 상상했습니다. 슬픈 사연도 있고, 웃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지훈과 임수정이라는 청춘스타가 캐스팅되면서 멜로 영화의 틀을 갖게 되고 환자들의 기이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유머로 소화되며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됐단다.
그러나 박 감독은 이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강조했다.
"그냥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고 하면 맥 라이언 같은 여배우가 나오는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를 상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선입견을 갖고 극장을 찾는 분들이 화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만 집요하게 쫓아가는 영화는 아닙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신병동을 다룬 영화다. 박 감독이 정신분열증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환자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미친 짓일 수 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체계와 일관성이 있고 논리가 서는 행동이지요. 그 세계가 망상의 세계라서 그렇지 그런 면이 하나의 비유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겪는 문제는 의사소통의 문제인데 그들의 소통이 우리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통째로 그들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 먼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도 그렇듯 박 감독의 영화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박 감독은 "영화 속 인물은 우리의 공격성·죄의식 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서 "이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샘 페킨파 감독처럼 폭력을 통해 도덕적인 탐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기회가 되면 다시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다"면서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는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박쥐'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12월7일 개봉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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