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변벌력 잃은 수능 표준점수제 '로또화'

2005학년도부터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 표준점수제가 영역별·과목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학교 사정에 따른 과목 선택, 쉬운 출제로 인한 변별력 약화, 동점자 양산 등 다양한 문제를 드러내 대학입시를 '로또'화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등급제가 도입되는 2008학년도부터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어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6일 치러진 수능시험은 지난해 지나치게 쉽게 출제된 언어영역의 난이도를 다소 상향하고 수리 가, 나형 및 사회·과학탐구 선택과목간 난이도 조절에 힘을 쏟았으나 구조적인 문제점은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표준점수제 도입 이후 본격화한 '쉬운 수능' 추세는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 한 문제를 더 맞히느냐 덜 맞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며 대학입시를 사행성 도박 형태로 만든 것.

1교시 언어영역의 경우 2005학년도 원점수 평균이 69점이나 돼 상위권 변별력 상실 비판을 불렀는데 2006학년도에는 평균점이 75.9점으로 더욱 올라갔다. 올해 역시 지난 9월 모의 수능 수준으로 출제돼 마찬가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년 내리 과목 간 표준점수가 10점 안팎의 차이를 보인 데다 2005학년도 국사, 2006학년도 물리Ⅰ처럼 너무 쉽게 출제돼 1문제만 틀려도 3등급이 되는 부작용을 낳은 사회·과학탐구 역시 올해도 비슷한 상황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사회 11개 과목, 과학 8개 과목으로 탐구영역 선택 범위를 넓혔지만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에 맞추는 게 아니라 학교의 교사 숫자나 교실 여건 등에 따라 선택이 사실상 제한돼 수험생들 사이에는 '강요된 로또'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수능이 9개 등급화하는 내년 이후에는 이 같은 상황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등급 경계선에 걸린 수험생 수만 명이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달라지고 선택 과목이나 난이도 등 외부 요인에 따라 등급이 차이 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로 인한 불이익도 한층 커지게 된 것.

수능시험이 수험생 변별 기능을 상실할수록 대학별 고사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어 올해도 수능 이후 수백만 원대 논술·심층면접 과외가 판을 치고 서울로 원정 수강하는 지방 수험생을 양산하는 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일현 송원학원 진학지도실장은 "수험생 줄 세우기식 입시를 개선할 수 있도록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의 선발 방법을 다원화하는 등 토대를 마련하지 않고는 수능 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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