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셍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좋아한다. 줄잡아 열 번 이상 읽었다. 고민이 많았던 10대 후반, 나는 줄곧 어린왕자에 빠져 지냈다. 나의 신춘문예 등단작도 '어린왕자를 추억함'이다. 그 어렵고 힘든 시절, 나는 이 책에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던가를 생각하면 오십이 넘은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셍떽쥐베리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어린왕자는 너와 나의 만남에서 '길들인다, 관계맺는다'로 귀결된다. 그것은 서로 가슴을 툭 터놓은 이해와 관용 위에서 꽃 피는 관계이다. 딸아이는 지금 미술대학 졸업반이다. 딸아이는 여우와 어린왕자의 첫만남처럼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서 이해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스스로 뼈저리게 체득하고 있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손재주가 있었다. 나는 이런 딸아이가 예술가의 길로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금속공예 쪽으로 슬쩍 떠다밀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딸아이는 제가 하고 싶은 학과에 들어갔다는 기쁨과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개교 50주년을 맞은 이 대학의 미대생답게 멋도 부리고,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생기발랄하게 대학 생활을 용하게 꾸려나갔다. 동아리에도 적극 참여해 공부 맛을 들여 대학 4년 동안 한번도 상위권애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나는 이런 딸이 내심으로 기특하기만 했다.
호사다마랄까? 졸업반인 딸아이의 올 한 해는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기에다 교수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학습권(學習權)의 강요와 일관된 인격 모독으로 너무나 힘겹게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미술대학이란 그 어느 곳보다 창의성과 개성이 요구된다. 그 창의성과 개성을 무시하고 독선적인 교수법을 주입시킨다면 독인 동시에 공정한 게임의 룰이 아니다. 이것은 이 나라 예술계의 앞날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선생(先生)은 앞서 간 사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좋은 선생이란 제자들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재능과 좋은 점을 끄집어내어 반질반질 닦아주는 사람일 것이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본다'는 시인도 있지만, 한 그루 어린 나무에서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어린왕자로 돌아가 보자. 사막에 추락한 비행사에게 홀연 나타난 어린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생떼를 한다. 비행사가 몇 번 양을 그려 주었으나 퇴짜를 놓는다. 그러자 구멍이 뚫린 상자를 그려준다. 그제서야 어린왕자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것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라는 작가의 권유이다.
어릴 때 어린왕자를 읽은 딸아. 더 이상 기 죽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거라. 그리고 힘차게 내일을 열어가거라. 아버지는 너를 믿고 사랑한다.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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