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천년 생산역사 스페인 '와이너리 투어'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풀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 그러나 귀환은 여행의 불문율. 하지만 와인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당분간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새로운 와인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의 템프라니요(레드와인을 만드는 스페인의 고유 포도품종)의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와인을 탐닉하는 순례의 길에서는 타인이 친구가 되고, 낯선 곳이 정든 고향이 된다. 폼페이 폐허에서 스페인산 와인주전자가 발견될 정도로 오랜 와인의 역사를 지닌 스페인은 농도가 짙은 와인을 생산한다.

40여억 평에서 포도나무가 재배되고 있는 스페인은 세계에서 포도 재배면적이 가장 넓다. 그러나 주로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며, 포도나무의 수령이 오래되고 포도밭에 포도와 다른 작물을 혼합해 재배하기 때문에 단위 면적당 포도주 생산량은 적다. 실제 와인 생산량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절반 정도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 45% 정도가 수출되고 있다.

수십억 년 전 바다였던 곳이 융기돼 형성된 스페인은 평균고도 약 600m의 고원지대. 한국과 위도가 비슷한 스페인의 대지는 지금 늦가을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광활한 고원에 펼쳐진 포도밭은 촌로가 들판에 붙여놓은 논불이 번지듯 눈길 닿는 곳마다 태양을 담아 붉게 퍼지고 있다.

수천 년의 와인생산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내수 위주에서 벗어나 수출로 눈을 돌린 지는 불과 30년. 캐내지 못한 다이아몬드. 스페인와인이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며 꿈틀거리고 있다.

▶사모라의 천연 지하 와인양조장

포도, 콩, 매운 고추 등의 생산이 많아 스페인 최대 자치정부인 카스티야 이 레온 주의 채소밭이라 불리는 사모라(zamora)도에는 38가구에서 공동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조합이 있다. 15세기 때부터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양조하는 가내 농업이 아직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이곳은 집집마다 중세에 판 지하 동굴에서 와인을 발효시켜 저장하고 있다.

사모라에서는 그동안 포도를 재배해 큰 와이너리에 납품하다가 지난 1999년부터 조합을 결성해 200ha의 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자신들만의 특색있는 와인을 만들고 있다. 조합 결성 후 4년마다 한 번씩 7인위원회에서 조합대표를 선출해 와인의 생산과 출하, 마케팅을 책임지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농군들이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하고 와인산업 현장으로 되돌아와 전통적인 방법에 현대의 신기술을 접목하고 있어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100년 된 고목에서 생산되는 고농축 와인

유럽의 포도밭에서는 한국처럼 키 큰 나무를 볼 수 없다. 사람의 허리 정도 높이로 키워 기계로 수확을 한다. 그런데 스페인의 포도나무는 키가 훨씬 더 작다. 스페인에서는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포도나무가 덩굴식물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땅에 바싹 붙어서 자란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면 놀라게 된다. 그렇게 초라해 보이던 포도나무들이 100년이 넘는 고목들이다. 웬만한 사람의 허리둘레를 넘는 두께를 지닌 거목들이 가지를 옆으로 뻗지도 않은 채 포도송이를 달고 있다. 자연히 소출이 많을 리 없다. 당연히 고농축 열매가 열린다.

보통 포도나무에서는 한 그루에 1Kg의 포도를 생산하지만 이곳의 고목에서는 0.5Kg만 수확한다. 껍질도 더 두꺼워 와인의 색이 훨씬 더 짙어지고 타닌성분이 더 많이 생성되는 고농축 와인의 생산이 가능하다. 기계수확은 아예 불가능하다. 전량 손으로 일일이 수확한다. 그래서 잘 익은 포도송이만 선별해서 딸 수 있어 품질관리가 가능하다.

▶우정으로만 살 수 있는 와인

스페인의 로마네 콩티(프랑스산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한 병에 300만 원을 호가한다)로 불리는 와인은 '베가시실리아 우니코(Vega Sicilia Unico)'란 와인이다. 이 와인은 포도의 품질이 좋은 해에만 극히 제한적인 양만을 생산하는 와인으로 의리를 중요시하는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 '돈으로는 살 수 없고 오직 우정으로만 살 수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1981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피로연에 쓰이면서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포도 수확 후 10년 동안 큰 오크통과 작은 오크통에서 번갈아 숙성시키고 난 뒤 일반인에게 선보이며, 적어도 20년은 묵혀야 제맛을 내는 최고급 와인으로 장기보존을 위해 2.5유로에 달하는 최상급 코르크를 사용한다.

▶IB(인터불고)그룹과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 주정부는 이번 스페인 와인너리 투어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국의 와인관련 전문가와 애호가들을 초청, 스페인 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수천 년 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카스티야 이 레온 주정부는 IB그룹 권영호 회장의 주선으로 작년 경북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유럽에서 두 번째 큰 스페인의 자치정부로 와이너리 투어를 계기로 양 자치단체의 경제·문화교류를 활발히 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글·사진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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