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도깨그릇

사노라면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간 것들이 있다. '도깨그릇'도 그 하나다. 모양은 엇비슷하지만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독'은 키가 높직하고 배가 둥두렷하며 맨 위쪽의 가장자리가 나부죽하다. '항아리'는 아래위가 좁직하고 배가 부르며, '중두리'는 독보다는 좀 작고 배가 부르다.

예전엔 어느 집에나 장독간이 있었다. 된장·간장·고추장에 김치 없이는 밥 한 숟갈도 제대로 못넘기는 우리기에 장독간 없는 집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주로 뒤뜰의 햇빛 바짝 내려앉는 양지쪽, 정갈한 곳에 터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집의 명당격이랄까.

庫房(고방) 열쇠가 그러했듯 장독간 역시 안주인의 자존심을 상징했다. 그 집의 살림 규모며 안주인의 살림 맵시는 장독간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온갖 모양의 장독들이 앞뒤로 두둑하니 줄지어 있고, 반질반질 윤기나면서 해묵은 살림때가 은근하면 여유로운 집이었다. 그런 집 장독간은 계절마다 새 메뉴가 따랐다. 봄엔 담북장과 막장, 여름엔 집장, 가을에는 청태장…. 반면 장독 수도 몇 안되는데다 그나마 후줄근한 모양새에 거미줄까지 늘어져 있다면 옹색한 살림임에 분명했다. 장독은 그 집의 家格(가격)을 말해주었다.

그러기에 주부들은 장독치레에 공을 들였다. 매일같이 씻고 행주질하는 건 물론이고, 봄·여름엔 채송화며 봉선화, 닭벼슬 같은 맨드라미 등을 둘레둘레 심어 화사하게 꾸몄다. 가을날, 장독간에 걸쳐진 큰 대소쿠리의 빨간 고추, 무말랭이, 박오가리, 가지오가리는 푸른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거긴 할머니와 어머니가 가족의 무병장수며 복을 비는 장소기도 했다. 삶에 지쳐 무너져 앉고 싶을 때도 장독간 앞에 무릎꿇어 두손 모으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장독간은 야속한 남편이 미워 남몰래 눈물 흘리던, 아내의 서러움이 밴 곳이기도 했다. 하기에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에서 장독을 두고 "그리 서러울 것도 그리 즐거울 것도 없이 한국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같이 살아간다."고 말했나보다.

플라스틱 용기의 환경 호르몬이 문제시되면서 새삼 도깨그릇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다. 아파트로 떠나면서 버려지고 잊어졌던 그것들! 제 몸 생각하느라 다시 찾는 사람들이 서운하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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