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 시평] 개성공단 급료 사기극

최근 국내 TV 뉴스를 통해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월급 명세서가 공개됐다.

지급과정은 생략한 채 공단 노동자들이 북한 일반노동자들에 비해 2~3배 높은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에서 한국 고용주들은 북한 노동자들에게 월급으로 美貨(미화) 57.5달러를 지급한다. 이 금액에서 사회보험료 7.5달러를 공제하고, 기숙·의료·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대가로 '사회문화시책비' 30%를 공제한 나머지 35달러를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TV 뉴스에 보도된 명세서에는 북한의 공식환율로 1달러에 북한돈 140원을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월 4,900원을 지급하는 것이 된다. 암시장 환율로 미화 1달러는 북한돈 3,000원에 이른다. 즉, 북한정부는 한국의 고용주들로부터 57.5달러를 받아 근로자들에게 실제적으로는 1.5달러 남짓한 돈을 지급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계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개성지역 휴전선 경비대에서 8년간 근무했던 이광수 씨의 증언으로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북한정부가 월급 대신 '대체상품'을 국정가격으로 지급하고, 심지어 전담 사무소 까지 두어 그 대체상품을 집단적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그 차액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탈북자 이 씨는 주장한다.

문제는 그 대체상품의 대부분이 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대북원조 식량 혹은 물품이고, '국정가격'이 임의적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7일 국내 한 친여 일간지는 북한정부가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지급될 급여의 대부분을 들여 해외에서 식량이나 물품을 구입해 와서 개성백화점이나 10여 군데의 보급소에 비치하면, 공단 노동자들이 그 물품이나 식량을 선택·구매 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원치 않는 물품을 월급명목으로 다량 불하 받아 처분하기 힘들어 시장에서 헐값에 팔기도 하고, 원거리 판매도 하고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어 이 보도는 특정 일면을 전체인 양 왜곡 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는 북한정부가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미국 달러화는 고스란히 챙기고, 그들에게 원조물자를 주면서 이를 호도하기 위한 '2중 사기극'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개성공단 노동규정 제32조에는 "기업은 로동보수를 화폐로 종업원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정부의 요구에 따라 한국의 기업들은 현재까지 임금지급을 북한정부에 위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임금갈취의 일차적 책임은 북한정부에 있지만, 이를 용인하고 있는 우리정부의 책임도 크다.

일부 학자들은 '공단의 노동자들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살이 찐 것으로 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극빈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노동착취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세계노동기구(ILO)의 기본정신과 규정들을 완전히 도외시 한 것이다.

북한정부의 임금갈취를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세계노동기구의 규정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에 대한 개성공단 노동규정 제25조도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당국이 임금으로 지급된 미화를 갈취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718호의 제8조 (d)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당국자들은 개성공단 사업이 "핵,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국 내 자금과 기타 금융자산, 경제적 자원들"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갈취가 북한의 몇몇 부정 공무원들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정부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자행하는 것이어서 그 돈이 정권의 정책적 목적에 쓰일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북한정부의 임금갈취를 호도하며, 그 용도에 대한 증거 불충분 운운하는 것은 또 다른 사기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허만호 경북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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