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 데스 노트(2006)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소원대로 된다는 죽음의 노트인 '데스노트'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두 천재가 벌이는 두뇌 게임은 편협하고 위험한 외길로 치닫는다.

법과 권력의 부조리를 깨닫고 절망감에 빠진 법관 지망생인 라이토는 우연히 데스노트를 손에 넣는다. 인간의 죽음을 한손에 거머쥔 라이토는 이것만이 악을 쓸어버릴 유일한 길이라고 단정하며, 흉악범을 하나씩 처단하기 시작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라이토는 세상에 대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점차 자만심에 빠져든다. 사람들의 찬사와 선망을 즐기며, 좌절이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여자도 희생시키는 싸늘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자아 도취감에 빠진 자기애적 성격의 소유자다.

산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신(死神) 류트와 동행하는 라이토의 모습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킨다. 인간의 온갖 지식에 대한 회의와 인간 존재에 절망한 노학자 파우스트에게 사신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쾌락을 줄 것이나, 한 순간이라도 그것에 만족하게 되면 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될 것이라는 계약을 맺고, 둘이서 여행을 떠나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라이토의 정체를 뒤쫓는 일본 경찰청의 명탐정 L 역시 독특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는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고, 컴퓨터나 게임 같은 기계적인 활동이나 취미를 선택한다. 불안해지면 단맛이 나는 초콜릿이나 과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폭식증을 보인다.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무표정하고 감정반응이 별로 없고 얼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냉담해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괴짜 L은 '정신분열성 성격'으로 은둔형 외톨이의 한 유형이다.

파우스트는 온갖 비극과 역경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법을 물리치고 이상적인 세상을 기원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두 명의 성격장애자의 두뇌게임은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간다. 파우스트적 인간이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인간이 될 것이냐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인 것 같다.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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