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숙자 부모 생활환경, 아이들에게 '대물림'

A씨(30·여)에게 세상은 감옥이었다. 약한 정신분열증세가 있던 A씨는 지난 2001년 남편이 세상을 뜨자 두살박이 아이(현재 7세)를 들쳐업고 거리로 나섰다. 전국을 떠돌면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해 하루살이를 했고, 아이와 함께 기차역사에서 잠을 잤다. 끼니는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했다. 그녀는 "업고 다녔던 아이가 걷고 말을 시작하면서 아이와 함께 동냥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했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해 동대구역에서 한 노숙인지원센터 상담원에 의해 발견돼 노숙자 쉼터로 옮겨졌다.

세상이 감옥이기는 B씨(40·여)에게도 마찬가지. 지난 2003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정신지체 2급인 아들(11), 딸(13)과 함께 대구시내의 한 노숙자 쉼터로 피신했다. 남편(46)이 술만 마시면 B씨와 아이들을 때렸고 심한 뇌 충격을 받은 아들은 결국 정신 장애를 갖게 됐다. B씨는 현재 8천만 원의 카드빚을 지고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아 기초생활수급대상 혜택도 받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쉼터에서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노숙자인 부모의 생활 환경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정신장애를 가진 부모가 노숙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도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내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소장 현시웅)가 지난 7월부터 두 달동안 조사한 노숙인 실태에 따르면 어린이 및 여성 노숙자는 모두 46명으로, 15명의 어린이가 어머니와 함께 1~5년 동안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 거리노숙자(쉼터 제외) 13명 중 10명이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 때문에 아이들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돼 노숙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박수미 센터 상담원은 "여성노숙자의 경우 대인기피증과 불안장애가 있다."며 "실제 실태조사 당시 여성노숙자 31명 중 13명에게는 접근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숙자의 정신상태나 자활의지, 아이들에 대한 조치 등 상황에 따른 체계적인 관리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시웅 센터 소장은 "어린이와 함께 있는 여성노숙자 중엔 자활의지가 강한 여성이 많다."며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노숙자 쉼터를 운영하는 민경용 목사는 "어린이 동반 여성 노숙자는 남편의 가정 폭력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자활 지원과 함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현미 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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