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긴 겨울이었어요. 20ℓ에 5천 원 하는 기름 살 돈이 없어 냉기가 가득한 사무실에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2000년 2월의 어느 날을 그는 이렇게 기억한다.
"사흘째 되던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더군요. 납품비 대신 받은 약속어음을 들고 구미 시내에 있는 은행이란 은행은 다 돌아다녔어요. 결국은 담보 없이도 현금으로 바꿔준다는 소식에 왜관까지 발품을 팔았습니다."
구미공단에서 공장자동화기계부품을 만드는 업체인 지상뉴매틱(주) 지상근(45) 대표는 9년 전 이맘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쉼없이 달리는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린 그에게 처음 찾아온 시련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위기치고는 강도가 수퍼태풍급이었다.
창업 이후 몇 년간은 잘 나갔다. 대기업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이라는 도박판에 뛰어든다고 걱정하던 주위 사람들도 부러워할 만큼 성장 속도가 빨랐다. "경기도 좋았고 운까지 따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내 정상궤도에 올라섰지요."
하지만 1998년 겨울 찾아온 IMF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창업 이후 매년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던 매출액 그래프가 성장세를 멈췄다.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대기업이 기침을 하면 우리는 금세 독감에 걸리게 마련이잖아요?"
환란의 여파는 이후 3년을 더 '독감' 속에 살게 했다.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환란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현금 대신 약속어음을 주는 대기업의 '횡포'를 두고 궁리했다. "대기업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시스템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지 대표는 결국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학교 실험·실습기구를 제조해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없는 돈을 쪼개 새로운 분야의 연구개발에 매달렸고, 그동안 등한시했던 거래처와 품질에도 더욱 신경을 썼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매출곡선은 가파르게 뛰었다. 의존체질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갖게 된 것이다.
"위기가 또 하나의 기회였어요. IMF가 스스로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 셈이지요."
IMF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10년 동안 10명이었던 종업원 수가 지금은 20여 명으로 늘었고, 11억 원이었던 매출액도 70억 원으로 7배가량 불었다.
"열심히 깨지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IMF는 교만하지 말라고 하늘이 저에게 준 선물인 것 같아요."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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