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10분의 1 인생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鍊金術(연금술)이 있다고 믿었다. 납'구리 같은 쇠붙이들을 신묘한 秘術(비술)로 눈부시게 번쩍이는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13세기 프랑스 학자 뱅상 드 보베 같은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연금술을 알았다고 주장했고,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모든 쇠붙이를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세칭 '賢者(현자)의 돌'을 구하느라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15세기 프랑스의 부유한 귀족 마레샬 드 레이는 연금술에 빠져 엽기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다. 호화로운 생활로 재산이 줄어들자 연금술사들을 고용했다. 그들은 '현자의 돌'을 얻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심장과 허파 등을 악마에게 주어야 한다고 꼬드겼다. 황금에 미친 그들은 3년간 무려 100명의 아이들을 유괴해 죽였고 마침내 사형당했다.

때때로 사람들은 집단적 迷妄(미망)과 狂氣(광기)에 사로잡힌다. 중세 서구 사회를 휩쓸었던 저 끔찍한 '마녀사냥'도, 제2차 세계대전의 피바람을 몰고 왔던 나치즘도 시대와 사회의 광기였다.

현대의 서구 사회에서 연금술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에 그 연금술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다름 아닌 '부동산 투기'. 처음엔 스멀스멀 안개처럼 피어오르며 사람들을 조금씩 취하게 만들더니 삽시간에 전국을 狂風(광풍)으로 뒤덮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웃듯 천정부지로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도무지 꼬리가 잡히지 않는 채 이제 지방으로 광풍을 날려보내고 있다. 어저께 마산의 어느 아파트 청약 현장에는 구름떼같이 몰려든 인파로 난리법석이 났다. 마산이 투기지역이 아니기에 이 같은 과열 현상은 더욱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분양만 받으면 떼돈 번다는 사고, 아파트가 번쩍이는 황금덩이로 변하리라고 믿는 이것이 현대판 연금술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고개만 한 번 살짝 돌려도 어디랄 것 없이 수십 층짜리 고층 아파트들이 공룡처럼 떠억 하니 버티고 있다. 어느 날 동네 하나가 통째로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다. 저토록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왜 가격은 그토록 미친 듯이 뛰어야 하는지…. 집 없는 사람은 왜 여전히 집이 없어야 하는지…. 한 칸 陋屋(누옥) 외엔 송곳 하나 꽂을 땅 없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이다.

하긴 최근의 '상위 100인 주택 소유 현황'(2005년 8월 기준)을 보니 다주택 소유자 상위 100명이 가지고 있는 주택 수가 모두 1만5천464 채에 달했고, 1인당 평균 155채나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 곳 모르는 부동자금이 약 500조 원이나 된다는데, 이 돈보따리들이 죄다 아파트 청약시장으로만 모여드는 걸까. 오죽하면 나라의 얼굴인 서울 전체가 투기지역으로 지정됐을까. 전세계에서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없다.

가뜩이나 멀어지고 있는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적 간격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있다. 마치 한 번 떨어지면 올라올 길 없어 얼어 죽어야 하는 깊고 깊은 크레바스처럼.

게다가 부동산 광풍에 지방 사는 사람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1, 2년전만 해도 지방 대도시와 수도권의 집값이 2, 3배 정도 가격 차가 났다면 지금은 서울 강남과 비교할 경우 무려 10배까지 차이 난다. 지방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목 비틀린 닭처럼 힘 없는 모습이다. "우린 강남의 10분의 1토막"이니 "10분의 1 인생"이니 하며 괜히 억울해 하기도 한다.

한때는 로또 대박 광풍이 수많은 사람들을 홀리더니 이제는 부동산 투기 광풍까지 덮쳤다. 숙지는가 하면 어느 사이 또 튀어나오는 이 미친 바람.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 고질병이다. 전설적인 名醫(명의) 화타나 편작이라면 고칠 수 있으려나. 단테의 '신곡'은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악'으로 색욕'폭식'오만'나태'탐욕'불경'분노를 꼽았다. 땀 흘리지 않고 떼돈 벌려는 탐욕의 광풍이 걱정스럽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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