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지인들로부터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논술을 잘 쓸 수 있느냐"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해진다. 내 깜냥으로는 상대의 구미에 맞는 해법을 내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글은 생각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어느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글의 종류가 달라질 뿐이다.
소설 그릇에 담으면 소설이 되고 논술 그릇에 담으면 논술이 되는 식이다. 글쓰기에서 독서가 중요시되는 것은 독서가 때로는 생각의 기름 역할도 하고 생각의 불심지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생각이 독창적이고 생각에 깊이가 있다.
어느 대기업의 입사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당신은 지금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운전하고 있다. 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는데 그 곳에는 병든 노파와 당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의사와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애타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차에는 단 한 명만을 태울 수 있다면 누구를 택하겠는가?"
이런 문제와 직면하면 사람들은 대개 머리를 재바르게 굴린다. 어떻게 대답해야 자신에게 유리한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고 점수의 모범 정답은 이렇다. "의사 선생님께 우선 차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 드리도록. 그리고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이런 기발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여유와 힘은 풍부한 독서 경험에서 나온다.
논술도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대학에서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굳이 논술고사를 실시하는 까닭은 논술이라는 형식을 빌려 수험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의 덩어리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따라서 문장이 좀 서툴고 형식이 다소 엉성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여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
이런 정도의 대답을 하면 지인들은 하나같이 시뜻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 원론적이라 들으나마나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못해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듯 이렇게 덧붙이고는 시부저기 자리를 피해 버린다.
"좋은 논술은 시루에 안쳐 찐 시루떡과 같습니다. 시루떡이라는 게 고물과 멥쌀가루의 다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까. 모범 논술이 바로 그렇지요. 고물이 주장이라면 멥쌀가루가 근거쯤이 되겠지요. 논술의 생명은 주장 못지않게 근거에 있습니다. 그 근거가 객관적이고 타당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자신의 경험이나 생활 속에서 터득한 것이면서 독창적이면 금상첨화입니다."
이연주(소설가·대구 정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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