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넘어진 자 땅 짚고 일어서야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땅을 떠나서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因地而倒者 因地而起 離地求起 無有是處也)

고려 중기 불교를 중흥시킨 고승인 보조국사 知訥(지눌) 스님이 설파한 말씀이다. 요즘들어 스님의 말씀을 새삼 곱씹고 싶은 것은 왜일까.

북한 핵실험 등에다 참여정부 특유의 어수선함과 시끄러움, 부동산 정책실패 등 나라안팎 문제로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한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피곤은 쌓이고 좌절감은 깊어지고 있다.

우리 대구·경북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나라 사정 보다 더 나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 이후 정치적으로 외톨이가 돼버린 대구·경북. 참여 정부 들어서도 이런 분위기는 여전한 것 같다.

체감상 나빠졌으면 더 나빠졌지 결코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적잖다. 대구·경북 위기론이 제기되고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이 추진하는 각종 대형 사업들이나 현안들은 정부의 관심이나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해 지지부진하다. 반면 서해안을 비롯한 또다른 국토의 한쪽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대형사업 구상들이 기획, 발표되고 있다. 정치적 결단에 따른 각종 사업과 공약들로 어지러울 지경이란다. 그런데 대구·경북은?

대구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문제를 한 예로 살펴보자. 대구는 남는 것 없다는 전세계 대학생 축제인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를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라는 초대형 악재에도 불구, 성공적인 흑자대회로 치러낸 인프라를 활용해 육상대회를 유치하려 나서 전력 투구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너남할 것 없이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정부나 여권에선 유치특별위원회 구성 등 관심조차 없다. 유치지원을 위한 정부·여권의 뒷받침이 절실하지만 吾不關言(오불관언)이다.

유치위원장인 유종하 전 외무부장관과 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실무를 맡았던 김범일 대구시장, 박상하 전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이 나름대로의 해외인맥을 활용, 맨투맨 식으로 유치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대구시는 가뭄에 한줄기 비를 기다리는 심정이지만 아직 정부나 여권에서의 단비같은 소식은 없다. 대구가 겨우 받아낸 것이라곤 '유치되면 지원하겠다.'는 한명숙 총리의 서한 뿐.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추진상황 보고회'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다른 현실이 안타까울 뿐. 대통령은 관계 부처 및 지자체 등이 역할분담을 철저히 해 박람회 유치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나아가 대통령은 "2002년에 왜 실패했는가?"라고 반문하며 "지난 번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어떻게 역할분담을 할 것인지 계획서를 짜서 대통령에게 별도로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애정의 온도차이가 어찌 이리도 클까.

그러나 어쩌랴. 현실은 냉정한 것을. 그렇다고 한탄만하고 있을 때인가. 이 땅(대구·경북)에 태어나 이 땅(대구·경북)에 넘어진 우리가 이 땅(대구·경북)을 딛고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일으켜 줄 것인가.

한반도 한 귀퉁이에 불과했던 경주의 小國(소국) 신라가 통일위업을 달성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던가. 惡材(악재)를 好材(호재)로, 不運(불운)을 幸運(행운)으로, 不可能(불가능)을 可能(가능)으로 바꿔 온 우리가 아니던가. 이 땅(대구·경북)에 넘어진 우리 뜨거운 피속에는 '하면 된다.'는 거역할 수 없는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일본 마쓰시타(松下)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뒷날 하느님이 주신 세가지 은혜로 성공했다고 회고했다. 집이 몹시 가난했고, 몸이 많이 약했으며, 초등학교도 못다녔기에 부지런히 일했고, 건강에 신경을 썼으며, 열심히 배웠고 그래서 크게 성공했다고. 이 땅에 넘어진 자들이여, 오는 28일 대회유치를 신청하는 날, 마음 마음마다 유치기원의 촛불을 켜보자. 꽃피고 새우는 내년 3월을 기다리며.

정인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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