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과 술자리에 종종 등장하는 안주가 작가 이인화다. 소설가이자 평론가, 대학교수이자 세계 정상급 게이머, 이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그의 소설에 대한 찬양이 쏟아지곤 했다. 우리는 때때로 이인화의 천재성을 부러워했으며, 때때로 기분 나빠했다. '재미있고 충실한 소설을 제공해주니 즐겁기는 하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인간이 동시대에 태어나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가….'
소설 쓰기와 학교 공부는 일정 항 공통분모를 갖지만 상반된 성향이 크다. 교과서 공부가 질서에 대한 동의와 이해라면, 소설은 다수가 합의한 질서에 대한 저항 혹은 틀 깨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사람 치고 삐딱한 사람 드물고, 삐딱한 몽상가치고 공부 잘 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런데 이인화는 두 가지를 다 해내는 인물이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그러니 부럽고도 미울 수밖에. 게다가 점잖은 대학교수가 온라인 게임에서 프로게이머조차 혀를 내두를 실력자라니….
어린 시절 이인화의 집에는 장롱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책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 교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독서광이었다. 덕분에 이인화 역시 책 더미에 묻혀 살았다. 초등학교 때 이광수 전집을 독파했고, 야한 소설부터 철학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런 독서가 오늘의 이인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에 4번 전화통화 했다. 그는 용건이 끝났다고 전화를 탁 끊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의 마지막 인사를 듣고, 굳이 자신이 또 한번의 최종 인사를 덧붙일 만큼 예의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만났을 때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절했다. 상경 20년이 지났지만 이인화는 여전히 대구 말씨를 썼다.
◇ 본명 류철균, 이름 왜 바꿨나
작가 이인화의 본명은 류철균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을 버린 자는 이전의 자기를 부정하는 자가 아닐까? 혹은 불가에 귀의한 스님이 '법명'을 얻듯 새 탄생을 선언한 것일까?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소설은 100% 혼자 하는 작업이며, 혼자 책임져야 하는 거죠. 실존적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물론 집안에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는 소설 속에 자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류철균'을 낳고 기른 집안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다. 물론 류철균이 작가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했다.
이인화는 '집안에 끼칠 누'를 걱정했지만 그의 소설에 작가의 신변은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이인화가 썼으니 이인화의 색채와 기질은 묻어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작가의 내면 고백'이 아니라 '뚜렷한 줄거리'를 가진 새로운 이야기다. 이인화란 필명은 염상섭 소설 '만세전'의 주인공에서 따왔다. 평론과 소설, 생활인과 작가 등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겸하는 사람(이인화)이라는 뜻도 있다.
그는 고교 시절 이미 동인지 계단문학을 출간했을 정도로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물론 공부 잘하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에게 반동, 악동, 냉소적 기질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학에 그처럼 심취했을 리 없다.
이인화를 만나기 전에 프로필을 검색했다. 고교 입학 연도는 기록돼 있었지만 졸업연도는 나와 있지 않았다. 풍문대로 그는 고교시절 문학하는 동기·후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망나니짓을 하다가 퇴학을 당한 것일까?
"사건이 있었지만 무사히 졸업 했습니다. 징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소설에 나타난 인물과 저를 동일시한 때문인 것 같아요."
◇ 한번 읽으면 푹 빠지는 작가
그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그 '내공'에 감탄을 금하기 어렵다. (내 개인적 취향 탓인지 모르지만) 그의 소설 한 줄에는 평범한 작가들이 한 페이지에 담아내기도 벅찬 내용이 녹아있다. 그런 강력한 힘은 한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반에 유지된다. 그래서 한 두 권쯤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그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는다. (내 소개로 이인화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독자들 대부분은 그의 팬이 됐다.)
이인화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다. 시작은 국문과 교수였다. 인문학자에서 공학자로 변신한 것이다. 이화여대 베스트 티처로 선정되기도 했다. 게다가 복합 문화레저공간으로 탈바꿈중인 김포공항의 스카이 파크 전시관 '디지털 스토리' 설계를 맡고 있다.
그가 하는 일, 혹은 해온 일은 많다. 영화 '청연', 창작발레 '신시21', 설치미술 '아슈켈론의 개'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2' 칭기즈칸 혈맹의 군주였으며 차세대 온라인 게임 '쉔무'(2003년) '길드워'(2005년)의 스토리 구성에도 참여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몽골리안포스'로 이름을 날리는 세계 정상급 게이머이기도 하다.
이인화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자신의 일이 지리멸렬 하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술, 연애, 게임' 중 하나를 포기해보시길, 그래서 이인화의 말이 맞는지 시험해보시길.
그는 30대 시절 책상 3개를 붙여두고 3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번역(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한쪽에서는 소설(영원한 제국), 또 다른 책상에서는 논문을 썼다. 그러나 요즘은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친 사람답지 않게 낯빛은 생생했다.
◇ 콤플렉스가 있냐고? 당연하죠.
작가 이인화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을까? 콤플렉스 없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우문(愚問)을 던지고 말았다. 너무 완벽한 사람이 아닌가. 그는 당연히 콤플렉스가 있다고 했다.
'게임에 빠진 사람들은 일이 싫고, 현실 패배자적 기질이 있다. 세상일이 뜻대로 된다면 뭐 하러 게임이 빠지겠는가.' '세상에는 한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더라. 그런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한다.' '머리 크고 팔다리 길고 체육을 못하는 집단들, 이런 집단들이 지식인이 됐는데 1980년대를 지나면서 몰락했다. 이 몰락한 자들의 열등감과 비애가 내 소설의 색깔이기도 하다.'
이인화는 게임에 빠져 산다. 그래서 두 딸들로부터 '좋은 아빠'로 평가받는다. 초등학생인 막내딸의 게임 '요구르팅'에 들어가 딸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괴롭혀 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하기야 어린 딸과 키득거리며 게임이나 하는 남편을 좋아할 아내가 있을까.
이인화는 게임이 미래 세계문화사업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적과 성별의 구분이 없는 공간, 예상치 못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공간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가 김포공항 스카이 파크 사업에서 맡은 '디지털 스토리 설계'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인화가 게임을 즐기는 또 다른 이유.
"정년 퇴직하신 선배 교수들이 가끔 연락을 하십니다. 무슨 프로젝트 같은 것을 제안하시기도 하고요. 별로 대단치 않은 프로젝트들인데, 일부러 연락하시는 걸 보면 외로우신가 봅니다. 일이 줄어들고, 만나는 사람도 줄어들고….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서 게임에 취미를 붙였어요. 설령 내가 산골짜기에 있어도 온라인에 접속만 하면 국제인이 될 수 있거든요. 제게는 전 세계에 동생들이 많아요. 게임에서 만난 동생들요."
◇ 좋은 소설의 요체는 '스토리'
작가 이인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델로 쓴 작품 '인간의 길'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와 환상을 가진 책'이라는 비판이었다.
박정희…. 대학교수 신분의 지식인, 이름난 작가가 손대기에는 께름칙한 주제다. 아무리 잘 써도 본전 찾기 힘들다. 소설 읽는 계층이 대체로 20, 30대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증오'로 각인돼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인화는 박정희의 출생과 성장, 내면세계에 대해 우호적인 눈으로 썼다.
"인간 박정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섬세하며 내면적인 사람이었요. 그에게 주어진 조건은 황량하고 먼지 나는 가난이었습니다. 섬세하고 내면적인 한 인간이 폭력적인 현실과 어떻게 마주 섰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작가 이인화는 앞으로도 박정희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인화는 '문학출판시장이 죽은 이유를 독자가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가 구태의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자의 눈높이는 이미 장대한 스케일과 굵직한 스토리에 가 있는데, 한국소설은 여전히 작가의 신변잡기, 내면고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위기에 처한 것은 모더니즘 이후의 일부 소설이지 소설 그 자체가 아니다.'고 했다.
◇ 대구에서 많은 것을 받았다
작가 이인화는 자신의 문학적 자양 대부분을 대구에서 받았다고 했다. "이태수 형(시인·매일신문 논설주간), 이하석 형(시인·영남일보 논설실장)들이 기질을 많이 키워주셨죠. 좋은 선배들이었어요. 아주 댄디(멋쟁이)한 분들이었는데 딸 시집보낸다는 소식 듣고 많이 웃었어요." 젊은 태수 형 이미지와 이제 곧 할아버지가 될 사람의 이미지가 와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인화는 십수년 연상인 이태수'이하석 시인을 형이라 불렀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렇게 불렀다.
그는 대구·경북 일이라면 힘이 닿는 한 돕고싶다고 했다. 대구가 더 이상 공장으로 먹고살기는 어려우며 문화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대구뿐만 아니라 문화가 나라의 미래가 되는 시대라고도 했다. 고향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은 기대이상이었다.
생활인과 시인(예술가)으로서 그는 힘들어했다. 학생들을 좋은 기업에 취직시키려면 교수들이 나서서 경력관리를 해줘야 한다. 각종 프로젝트와 국가사업을 유치해 연구에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외국 유학까지 보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좋은 기업에 취직 많이 하면 보람 있고 즐겁기는 한데, 한 기수 취직시키고 나면 팍팍 늙는다고 했다.
이인화의 작품에는 시인이 되고자 했으되 '생활의 시궁창'에 빠진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려인'의 수테베이는 시인의 눈을 가졌지만 칼을 든 군인이 됐고, '말입술꽃'의 서상효는 남루하기 그지없는 밥벌이꾼이 됐다. 수테베이와 서상효는 이인화의 분신일지도 모른다. 이인화가 재능에 비해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는 요즘 다음 작품을 준비중이다. 태평양 전쟁당시 가미가재 특공대로 나섰던 조선 청년과 일본 전투기 제로센 조종사였던 사까이 사브로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틀림없이 재미있겠지만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 이인화(본명:류철균·40)=서울 대학교 국문과 박사.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 미디어학부 교수. 이화여대 BK21 사업단장. 소설가이자 게임 스토리 작가. 1998년 평론으로 문단 데뷔.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1992년) '영원한 제국'(93년) '인간의 길'(97년) 등을 냈다. '작가세계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 문학상' 등을 받았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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