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버 스토리)'학부모 상담대학' 현장 참가자 사례

지난 23일 오후 대구 상인고에서는 학부모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부모 상담대학' 강의가 한창이었다. 강연자로 나선 추석호 교장의 말에 어머니들은 쫑긋 귀를 세우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주제는 '자녀와의 대화기술'. 지난 1학기 처음 문을 열어 쭉 이어진 강의다. 추 교장이 잘못된 사례를 얘기하자, '그래 저건 내 얘기야!'라는 공감대가 일순 퍼진다.

▲ 상인고 '학부모 상담대학' 다니는 우순남씨

"아들과의 사이가 좋아지면서 제 인생까지 밝아진 것 같습니다."

고2 아들을 둔 우순남(53·여) 씨. 우 씨는 요즘 아들과 마찬가지로 이 학교의 '학생'이 됐다. 그는 강의가 열리는 매주 목요일 7시를 손꼽아 기다리는 열성파다.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달라진 아내의 모습에 남편이 등을 떠밀 정도다.

"교장 선생님이 강의하는 중에 사례로 등장시키는 나쁜 엄마가 꼭 제 얘기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우 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즈음부터 고1때까지 심각한 갈등을 경험했다. 사사건건 충돌하기 일쑤였고 진심을 몰라주는 아들이 야속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점점 더 없어졌다.

세대차도 원인이었다. 아들과 그 위 누나는 띠동갑. 아들이 중학생 때 우씨는 이미 손자를 둔 할머니였다. "50년대생인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제가 배운 방식들을 강요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시절엔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야했으니까요."

불화의 계기는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작스레 찾아왔다. 아들이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지내던 때였다. "봄 소풍을 가는데 새벽 6시까지 학교에 간다면서 집을 나서더라구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켜보니 아이가 학교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더군요. 몰래 따라가보니 PC방이었어요."

우 씨는 화가 나 야단쳤지만 아들은 되레 '왜 미행을 하느냐', '한번 쯤 속아주면 안되나'며 큰 소리로 뿌리치며 반항했다. 큰 충격이었다. 한동안 아들과 눈을 마주치기가 주저스러웠다. 그래서 중학교 때는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다. "컴퓨터만 하고 살아라!" 하고 호통칠수록 아들은 나보란 듯이 게임에 열중했다. 아들의 성적은 갈수록 떨어졌다.

고교에 진학한 아들이 피아노에 관심을 보였을 때도 우씨는 냉담했다. "피아노가 얼마나 어려운데, 지금 와서 전공하겠다니 말도 안된다, 너는 못한다 그랬죠." 하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돼 저 혼자 '양손 연주'를 하게 된 아들이 내심 놀라워 주변의 음악 전공자들에게 데려갔다. 음악 영재라고 했다. 용기를 주지는 못할 망정 핀잔만 준 자신이 못내 미안했다.

우 씨는 '학부모 상담대학'에서 다니기 시작하면서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고 털어놨다. "전에는 '왜 학교에서 있은 일로 집에서 화를 내느냐'고 짜증을 냈지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가보구나. 조금 있다 얘기하자'라고 해야 마땅했어요."

실제 그렇게 해 보니 아이가 먼저 입을 열더라고 우씨는 말했다. 내 아이가 별난 것이 아니었다. 싫어하는 과목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아들을 좀 더 인격체로 존중해줘야 했다. 강의를 통해 '자녀와의 대화 기술'을 배우고 난 뒤 가정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우 씨는 "학부모를 위한 이런 자녀교육 프로그램이 학교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재중 '학모교육대학' 다니는 추현숙씨.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중1 딸을 둔 추현숙(41·여) 씨는 서재중학교에서 운영하는 '학모교육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이 얼마나 강압적인 엄마였는지 뼈저리게 뉘우쳤다고 했다. 매번 강의에 빼먹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학모대학의 팬이 됐다는 추 씨. 그 역시도 이 곳에 나오기 전에는 전형적인 '강요하는 엄마'였다.

"예전에는 '야 일어나!' '밥 먹어!' '숙제 했어?'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이 말이 아이의 마음에 어떤 생채기를 낼지 전혀 몰랐거든요." 딸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입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럴 때면 아이 입에서는 '엄마가 뭘 알아!' 하는 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냥 애 키우기가 힘들구나 하는 생각으로 아이의 불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학교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강의를 듣고부터 딸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더 이상 아이를 내려다보지 않게 된 것이다. 자식의 인성지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가정에서 어떻게 공부를 도와야 할지, 생활지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추 씨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과 공부 내용이 저녁 시간에 화제가 된다면 그 가정은 이미 대성공이 아니겠느냐."며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학부모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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