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장 전입은 초교때부터…막을 방법 없나?

고교입학을 앞둔 대구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구 수성구의 전입 실태조사에서 위장전입이 해마다 크게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전입 조사를 맡아 온 대구교육청과 수성구청은 위장전입이 실제로 줄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장전입은 초교 고학년부터 시작되지만 조사 대상은 중3학생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위장전입이 줄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수성구의 속칭 '명문' 중·고가 존재하는 한 돌고 도는 위장전입 숨박꼭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장전입은 초교때부터

대구 고산과는 버스로 2코스 거리에 있는 개교 6년째의 경산 J초교. 교무실 게시판에 적혀 있는 학년별 학급, 학생수 현황이 이상했다. 유례없는 저출산시대라는데 저학년으로 갈수록 학생수가 더 많았다. 1학년 학생수는 305명인데 2학년 239, 3학년 244, 4학년 250명으로 갈수록 줄더니 5학년과 6학년은 각각 192, 165명밖에 되지 않았다. 한 교사는 "5학년 말 227명이었던 지금의 6학년생들이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 줄줄이 대구 고산으로 전학갔기 때문."이라며 "고산권 아파트 개발에 따라 정말 이사 간 학생들도 많지만 적어도 30, 40%는 위장전입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사는 "경산에서 대구로 통하는 길목인 중산삼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는 초·중·고 학생들을 세어보면 위장 전입실태가 드러날 것"이라며 "아마 수십대는 가득 찰텐데 정말 이사를 갔다면 대구행 버스가 터져나갈 이유가 없다."고 씁쓸해 했다.

교사들에 따르면 경산권 학생들의 위장전입 역사는 고교평준화가 이뤄진 1970, 80년대부터 한결같다. 다만 3년전에는 학급당 7, 8명 수준이던 위장전입 학생 수가 최근 1, 2년새는 3, 4명으로 떨어졌다.

학생들을 대구에 빼앗긴 경산권 초교들은 위장전입 조사에 '소홀한' 대구 고산권 초교들을 탓하고 있지만 고산권 초교들은 "경산쪽에서 전입하는 학생들에게 실제 주소지가 경산권으로 드러나면 옛 학교로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각서까지 받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경산권 초교들은 "지난 수십년간 위장전입 학생을 적발해 경산으로 다시 돌려보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일단 학생을 받아들이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초교 고학년 위장전입 세태는 대구시내 학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비수성구 또는 같은 수성구에서 이른바 수성구 '명문 초교'로 전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학교들은 고학년일수록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난다. 위장전입이 가장 많은 수성구 범어4동사무소 전입보고서에서는 "시지, 고산, 만촌, 수성동 등 이웃동네의 초·중학생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다."는 내용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아파트 값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도 바로 학군입니다. 범어4동으로 전입하는 학생들의 원 주소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신설 중·고교가 있는 동네가 많습니다. 신설 중·고교때문에 아파트값이 1천만 원 이상 떨어졌다는 웃지못할 이야기가 번번히 나돌고, 신설 중·고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기 위해 위장전입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위장전입 실태를 조사한 수성구청 공무원들은 "범어4동이나 만촌 3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누구나 한번쯤 위장전입 민원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범어4동 K초교와 만촌3동 D초교 교사들도 "위장전입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위장전입 학생을 원주소지로 돌려보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알아도 못 잡는 위장전입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장전입 조사를 담당한 대구교육청과 수성구청 공무원들은 "중3이든 초교생이든 알아도 못잡는게 위장전입"이라고 했다. 다음은 취재차 만난 공무원들이 '솔직하게' 밝힌 위장전입 백태.

"사람은 살지 않는데 옷가지나 책상, 침대가 모두 놓여 있습니다. 평소에는 원래 집에서 다니다가 조사기간에 맞춰 잠깐 거주하는 케이스인데 위장전입이 아니다고 끝까지 잡아떼면 단속이 쉽지 않습니다."

"평일에는 집에서 다니다가 주말에만 잠시 다녀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심은 가지만 역시 위장전입이라고 단정짓기가 어렵습니다."

"아내와 자녀에게 월세나 전세를 얻어주는 수성구 기러기 아빠들도 상당합니다. 지금 사는 집값보다 더 비싼 수성구에 전세를 마련하는 것이죠. '합법' 전입이지만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육 공무원들은 "현행 중·고교 배정 기준이 위장전입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관련법은 주소지가 아니라 졸업학교를 기준으로 중·고교를 배정해 교육법에 '정통한' 사람들은 위장전입 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면 다시 주소지를 원래대로 옮겨놓는다는 것.

위장전입 처벌도 솜방망이다. 위장전입이 들통나 주민등록이 말소되더라도 단 5만 원에 복귀시킬 수 있고, 다시 위장전입을 되풀이할 수 있다.

◇어떻게 막을까?

"그럼 어떻게 위장전입을 막아야 하느냐."고 교육, 행정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대답은 실망스럽게도 서로 상대방 책임을 더 강조했다.

한 교사는 "위장전입 학생들은 초교때부터 위장전입을 시작한다. 중3때 위장전입 조사를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행정기관에서 전입이 시작되는 초교때부터 현장 조사를 실시해 옛 주소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사무소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전입은 신고만 하면 되는데 실태를 일일이 조사할 여력이 없고, 그럴 권한도 없다는 것. 한 공무원은 "위장전입 사실은 학교에서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위장전입 사실을 알아도 학생들을 돌려보내지 않는 학교가 더 문제"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근본 대책으로 단일 학군제와 학부모 의식전환을 제안하고 있다. 경산학군, 수성구학군, 비수성구 학군 가릴 것 없이 골고루 학생들을 뽑아 문제 발생 소지를 원천 차단하자는 것.

이에 대해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근거리 배정을 원칙으로 하는 관련법을 무시하고 단일 학군제로 통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성적에 상관없이 내 아이만큼은 일단 수성학군으로 보내고 보자는 학부모들의 의식전환이 먼저"라고 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