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고정관념과 역발상

이미 글쓰기의 전범이 되어 버린 삼다(三多), 즉 다작(多作)·다독(多讀)·다상량(多商量)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가치 있는 글쓰기의 전략이다.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에서 유래된 이 전략이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된다는 게 여간 신기하지 않다.

어쩌면 글쓰기에서 다작보다 다문이 더 가치 있는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많이 쓰고 많이 읽는 것보다 많이 듣고 많이 읽는 것이 궁극적 목적인 사고를 풍요롭게 하는 데 훨씬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생명은 발산적 사고에 있다. 발산적 사고는 독창적인 안목에서 나오고 독창적인 안목은 다문과 다독에서 나온다. 간혹 글감이 없어 글을 못 쓰고 있다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런 사람은 엄격히 말하면 글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통찰하는 안목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보아야 한다.

발산적 사고의 적은 고정관념이다. 일찍이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문학이란 사물의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개념화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명제는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 사물의 개념이 고정관념이라면 사물의 개념화는 발산적 사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의 약은 역발상이다. 이리유카바 최가 쓴 '그림자 정부'를 보면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뒤집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흔히 서양에서 흉한 숫자로 알려진 '13'은 프리메이슨(숨은 정부)이 아무나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짓으로 퍼뜨린 길한 숫자라는 것이다.

그는 그 증거로 미국을 상징하는 휘장과 1달러짜리 지폐를 제시하고 있다. 휘장에 새겨진 독수리의 양발에는 각각 화살과 감람나무를 쥐고 있는데, 그 화살과 잎사귀와 열매가 모두 13개씩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수리 머리 위에 새겨진 별과 가슴에 새겨진 미국 국기의 줄 또한 13개며 1달러짜리 지폐 뒷면에 있는 피라미드 역시 우연 치고는 너무 기묘한 1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증거는 이것뿐이 아니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긴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것의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위와도 같은 관념 속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안목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역발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 있다. 역발상이란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음'으로, '당연하지 않음'을 '당연함'으로 뒤집어 보는 일이다. 그러면 한순간 막혔던 생각들이 분수처럼 치솟는다.

이연주 소설가·정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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