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치른 수능시험 이후 대학진학 이야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말도 많다. 어딜 가나 "대학…, 대학…" 이야기뿐이다. 이들 속에서 묵묵히 '마이웨이'를 외치는 고3 학생들이 있다. 대학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고3 학생들. '이태백'이라는 신조어가 국어사전에 실릴 정도로 대졸자들의 취업난이 일상화된 요즘. 이들은 대학졸업장이 더이상 취업을 보장하는 자격증이 아니란 걸 안다.
"공부만 해서는 비전이 없어요. 누구나 다 대학가려고 하는데 공부 대신 기술을 배우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TV를 보다가 요리가 재미있는 것 같아서 배우고 있어요."
"명성을 날리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세계에서 하나뿐인 퓨전요리도 만들고 싶고요."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대포자'(대학진학포기자)는 아니다. 그들 역시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고3 학생들. 비록 대학진학의 꿈을 접었지만 낙오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당당하다. 포부도 당차다.
지난 27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대구산업학교. 피부미용과와 전자과 등의 실습실은 연말자격증시험을 앞둔 학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때마침 제과제빵실에서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제과제빵사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합격률은 10%에서 60%까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합격하는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들은 실업계 고등학생이 아니다. 일반계 학생들이지만 2학년 과정을 마치고 이곳에 와서 1년간 위탁교육을 받는 중이다. 산업학교에서 위탁교육을 수료하면 수시입학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곳에 온 학생들도 꽤 있다.
미용피부과 실습실. 실습모형으로 파마를 말고 있던 정민희(경명여고) 양은 "평소에 미용에 관심이 있는데다 대학에 바로 가는 것보다는 좋을 것 같아서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대형웨딩숍 취업이 확정됐다. 국가고시보다도 어렵다는 미용사자격증은 벌써 땄다. 웨딩숍에서 일을 하다가 기회가 된다면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다.
김금예(송현여고) 양은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는데…."라면서도 '공부하기 싫어서 기술을 배우는 것 아니냐'고 묻자 "우리 미용과는 공부를 잘해야 들어올 수 있어요."라며 발끈했다. 미용과는 경쟁이 치열한 인기과라서 학교성적이 뛰어나야 입학할 수 있단다.
'꽃미남' 스타일의 한 남학생은 "어려서부터 관심도 많았고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면서도 여자친구의 머리를 손질해주면 좋아할 것이라는 말에 얼굴을 붉혔다.
제빵실에서는 제빵사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퍽이나 긴장된 분위기다. 그러나 감독관이 시험을 보지않는 참관학생들에게 반죽숙성하는 법을 자상하게 가르쳐주고 있을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2층 정보전산과 멀티미디어실습실. 20여 명의 학생들이 복잡한 회로판을 설계하느라 정신이 없다. 남들보다 일찍 과제를 끝낸 학생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음악을 듣는 등 여느 고3교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곳 산업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일반계 학생의 90%는 대학에 진학한다. 1년간 전문교육을 받고 자격증까지 따서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적지않다.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는 정민희(경명여고) 양은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지만 미용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그렇다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는 시선은 참을 수 없다. "공부만 잘해서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 우리도 잘 알아요."
미용기술을 지도하고 있던 강미나 선생님은 "생각보다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편"이라면서 "우리 아이들 모두 (미용사시험에) 합격시켜야죠."라고 말했다. 미용사시험은 12월에 있다.
▶대구산업학교는?
1991년 경북기계공고에 부설학교로 설립됐다. 전문대 진학시 특별전형 혜택과 국가기술자격 기능사 시험 때 필기시험 면제, 실습비 면제 등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
대구 시내 일반계(인문계) 고교 3학년 학생 중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입학할 수 있다. 기계, 자동차, 전자, 정보전산, 제과제빵, 미용피부 등 6개과가 개설돼 있으며 정원은 315명. 현재는 287명이 기술을 배우고 있다. 위탁교육이므로 졸업할 때는 원래 학교에서 한다.
대구산업학교는 지난 2004년, 2007년까지 교육부지정 연구시범학교로 지정될 정도로 교육성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북고, 사대부고, 경신고, 경명여고, 성화여고 등 대구시내 대부분의 학교 1~21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12월 1일부터 14일까지 내년도 원서를 받는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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