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스승의 길

나에게 몇 분의 스승이 있다. 학교에서 배울 만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문학판에서 몇 분의 스승을 만났다. 그 중에 한 분이 김원중 시인이다. 뒤에서 늘 무언의 회초리를 드시는 자부(慈父) 같으신 분이다.

내가 처음 선생을 뵙기는 이십대 중반의 혈기왕성하던 때였다. 가슴에 들끓던 피를 삭이지 못해 산지사방 떠돌던 시절, 선생은 그런 나를 제일 먼저 인정하고 너그럽게 가슴으로 껴안아 주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스승이 있어서 세상은 살 만하다.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선생은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들을 건사하는 가장이었다. 곤궁한 집안 사정으로 중·고·대학을 줄곧 야학으로 다녔다. 고교 시절 '별과 야학'이란 2인 시집을 내기도 했다. 선생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주경야독, 공부에만 전념했다.

뼈를 깎는 신산의 세월을 견뎌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학위 논문 증정 식장에서 선생은 인사 말씀을 하다가 그만 울먹이고 말았다. 가슴 벅찬 인간 승리의 눈물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선생은 늘 웃고 넉넉하시다. 외유내강의 전형인 선생은 사람 사귀기를 좋아한다. 한번 사귄 사람과는 일생 동안 연을 끊지 않는다. 그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늘 귀를 열어두고, 마음의 끈을 풀어놓는다. 후배들이 취직이나 어려운 일을 부탁하면 열 일 제쳐두고 앞장 선다.

선생은 평생 문학을 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고, 맥주 한두 잔이 고작이었다. 기호식품에 쓰는 돈을 아껴 책을 모았다. 서재에는 줄잡아 만 권의 장서가 있었다. 시간의 퇴적물로 휘황찬란한 서재를 나는 무상 출입했다.

이곳은 인문학의 보고였다. 없는 책이 없었다. 선생은 대학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 난 뒤 어쩔 수 없이 평생을 모았던 책을 뿔뿔이 흩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선생은 내게 문학이나 인생에 대해서 한마디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냥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했다. 나는 오랫동안 선생을 통해 인간적 신뢰를 배웠다.

선생이란 모름지기 인격적 감화 위에 학문과 예술을 전수해야 한다. 지금 선생은 병중이시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다녀 다행이시다. 나는 일생 동안 이 분을 스승으로 모시는 지복(至福)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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